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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국회의원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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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에서] 국회의원의 특권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02.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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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미국정치에서 극단의 정치가 사라진건 건국 후 100년쯤 지난 뒤였다. 연방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은 상대를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적으로 인식하는 정치문화가 팽배했다. 독립전쟁이 끝나고서야 정치적 반대자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대의 진입이 상호 관용의 전통을 마련해나갔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남북전쟁은 또다시 미국정치를 극단적 적대의 정치로 몰아갔다. 남북전쟁 세대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극단의 정치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또한 인종차별이라는 벽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면서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의 법칙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미국정치도 처음부터 상호 배려와 관용이 자리 잡지 않았으며 상대를 파트너로 인식하는 데 긴 시간의 기회비용을 지불했다.한국정치의 적대적 구조는 점점 강화되는 추세다. 박근혜 탄핵 이후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자는 국민적 에너지는 이미 사라졌고, 1980년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금 그 세력조차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진보진영의 무기인 도덕적 순결성조차 의심받고 있다.

예단은 이르지만 이른바 '하명수사 의혹'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은 집권핵심의 도덕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고, 86세대의 민주화 훈장의 빛도 바랬다. 이들조차 기득권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정치는 정치의 일상 문법으로 연명하는 사회의 직업군 중의 하나로 전락했으며, 특권을 쫓는 권력지향적 집단, 인생역전을 위해 투신하는 승부의 세계로 추락했다.

정치가 바뀌기 위해서 보다 본질적인 것을 고민할 때가 됐다. 의원들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 특권이라면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 떠오른다. 이는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관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정치적 특권들이지만, 과감하게 손 볼 필요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화려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세비를 줄이고 여행 시 받는 지원도 없애야 한다. 그밖에 무수히 많은 개인적 차원의 특권을 줄여나가야 한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소명의식을 가진 정치인들로 거듭 태어나지 않으면 국회의원들의 사생결단식의 행태는 계속될 것이다.

국회는 유럽의 일부 국가들처럼 평범한 시민의 대표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사람이 일을 하는 대의기구이어야 한다. 일정 기간 국민의 공복으로서 사명을 다하고 다시 일반 시민으로 돌아오는 자리가 국회의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다면 지금처럼 일생을 걸고 사생결단식으로 덤비는 극한의 강경 투쟁은 사라질 것이다. 타협의 정치는 이의 당연한 결과물일 것이며 정치는 시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국회의원이 어떤 자리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선거경쟁을 핵심으로 하지만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국회의원이 시민의 대표라는 인식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현대한국정치 70년, 미국처럼 30년이 더 필요하다면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공직자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제정 과정에서 심화된 적대의 정치가 경자년(庚子年)에 강화될 것인지 여부는 4월 총선의 민의에 달렸다.

대한민국 헌법엔 특권이라는 단어가 1번 등장한다. ‘제11조 3항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사실 특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국회의원에 한해 두 가지 특권을 인정하는 조항이 있다. 직무상 발언에 대한 면책 특권과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아니할 불체포 특권. 적어도 법적으로는 다른 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특권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의 특권 말고도 검찰과 언론 등이 가진 권력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것 외에도 곳곳에 스며 있는, 별것 아닌 듯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특권도 있다. 사는 곳에 따라, 버는 돈의 액수에 따라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표현이 범람한다.

비정규직의 사원증 목줄·식권의 색이 정규직의 그것과 다른 곳이 있고, 노키즈존이 존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도로 퍼지자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자는 목소리, 아시아에 대한 혐오가 고개를 든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김지혜 교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특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별의 이면에 특권이 있는 이유다.

만약 지금 ‘내가 차별을 하고 있다고?’ 혹은 ‘나에게 특권이 있다고?’라는 의문이 들었다면 일단 제대로 된 길에 들어선 것이다. 특권을 해체하고 직시할 때만 차별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적 성취가 아닌 구조적으로 주어진 특권인 경우 이 분석은 더 유효하다. 올루오는 “우리가 가진 특권이 다른 이가 받는 차별과 교차하는 지점을 인식하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4·15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 회의 불출석 국회의원들에 대한 세비 삭감 등 패널티 도입’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했다민주당은 국회의원에 대한 실효적 징계 장치 부족을 개선하란 국민 목소리가 높은 만큼 법제 개선을 통해 ‘밥값 제대로 하는 국회’를 실현하겠다며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 회의에 불출석하는 경우 세비를 단계적으로 삭감하기로 했다. 불출석 일수가 전체 출석 일수의 10∼20%인 경우에는 세비의 10%를, 20∼30% 불출석 때는 20%, 30∼40% 불출석일 경우에는 30% 세비를 삭감하는 방식이다.

징계 규정도 신설해 불출석 정도에 따라 30∼90일의 출석정지와 제명이 가능하도록 했다.특히 국회의원이 헌법 46조에 규정된 의무를 위반할 경우 의원직을 파면할 수 있도록 국민 소환제도 추진한다. 국민소환의 남용을 막기 위해 유권자 5%가 요구할 시 헌법재판소에서 소환 사유를 검토하도록 했다. 윤리특별위원회도 상설화하고 국회의원의 자격심사나 징계 안건은 안건 회부로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도록 했다. 국회가 멈춰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회 개회 및 상임위원회 운영 의무화도 추진한다.

민주당은 공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365일 일하는 국회’, ‘입법 성과로 국민에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했다.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이 받는 특권은 △불체포 특권 △면책특권 △세비 1인당 GDP 기준 5.38배 등 국회의원들의 특권·특혜가 세계 3위라고 한다. 여야는 국회 의원 선거 때마다 각종 특권은 내려놓겠다고 공약을 했다. 하지만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다. 21대 국회 만큼은 공염불(空念佛)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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