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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58회째 신문의 날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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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58회째 신문의 날 즈음하여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 태백담당
  • 승인 2014.04.10 0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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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이 낫다"고 했던 기자 출신인 토마스 제퍼슨도 정작 대통령이 되자 "신문은 95%의 거짓과 4%의 과장 그리고 1%의 진실을 담고 있을뿐" 이라고 폄하 했다고 한다.스마트폰의 등장과 권력이 시녀로 전락한 일부 언론매체들로 인해 언론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신문의 사명과 책임 등을 자각하고 강조하기 위하여 신문인들이 정한 날. 1896년 4월 7일 창간된 '독립신문(獨立新聞)'을 기념하여, 1957년에 4월 7일로 정한 신문의 날은 2014년들어 58회째 맞이하여 현직 언론인으로 뒷일 생각없이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 할 시기다.아이들도 생일날 사고치면 덜 야단친다던데 선물은 고사하고 이날 만큼은 기득권에서 방관해주는 배려를 기대해 본다.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이날 열린 신문의날 기념 축하연에서 "신문이 진실에 입각한 보도와 의견 제시를 통해 소통의 가교역할을 해달라"며"신문인 여러분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진실의 대변자이자 시대 변화의 선구자로써 신문이 신뢰의 가치를 계속 지켜나가면서 진실에 입각한 보도로 시대 변화에 맞춰 나간다면 21세기 지식산업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신문(新聞)'. 신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이나 사실을 알리고 해설하는 종이로 된 정기간행물이다. 그런데 왜 하필 문(聞)자에 소리를 듣는 '이(耳)'가 들어 있을까. 신문을 귀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뭔가 좀 어색하다.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聞'은 중국 은나라 때 갑골문자의 근원을 가진다. '두 손을 모으고 꿇어앉은 사람'과 그 사람의 '귀와 입'을 확대한 상형글자다. 당시 자연재해나 전쟁 등 큰 사건이 발생하면 그 소식을 조상신에게 알리는 의식을 치렀다. 이 의식을 표현한 글자가 '聞'이다. 새로운 소식(新)을 듣고 조상신에게 알리는 형상(聞)이 바로 '新聞'인 게다. 이것이 지금 신문의 유래다. 이렇듯 신문은 소식을 알리는 수단 또는 매체다. 그러니까 신문은 읽는 일간지는 물론 보고 듣는 방송도 포함한다. 신문을 '읽는다'는 말도 맞고 신문을 '보고 듣는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중국에선 신문은 일간지와 방송 모두 일컫는다. 허나 우린 일간지에 한정한다. 여하튼 신문 가치는 은나라 때 그랬듯이 사회적 사실을 보탬과 뺌 없이 그대로 알리는데 있다. 그럼 우리 신문은 어떤가? 故 리영희 교수의 주장을 빌어보자. 리 교수는 언론인(言論人)을 언롱인(言弄人)이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기자들이 강자의 입장에 서지 말고 권력에 한눈 팔지 말아야 한다. 언론인은 가장 정직한 사관(史官)이고 공정한 심판관이며, 언론이 약자를 배신하면 언론인이 아니라 언롱인이다." "구린내 나는 언롱인들이 언론인을 참칭(僭稱)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사회에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소식이라는 것이 한결 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것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들 이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우리 언론인들은 객관적 시각을 가져야할 사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떤 일이나 대상을 제 또는 자사 이익을 위해 간교한 수단으로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 펜 대신 망나니 칼을 쥔 꼴이 아니겠는가. 여기 진실과 사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했던 사람이 있다. 중국 송나라 대표적 시인 도연명(陶淵明)이다. 그는 고아에다 끼니조차 제대로 이을 수 없는 빈한(貧寒)의 극치였다. 허나 원대한 입신의 꿈을 품고 학업에 열중, 늦은 감은 있으나 29세 때 비로소 강주제주(江州祭酒)을 시작으로 참군(參軍)이란 벼슬살이를 했다. 허나 이들 관직은 아주 보잘 것 없었다. 특히 참군은 주로 하는 일이 주(州)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글로 써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었다. 당시 문서는 직접 먹을 갈아 붓으로 써야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어떤 물을 사용했는가다. 샘물, 개울물, 빗물 등 먹을 갈을 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주 많다. 그는 보고하는 날이면 일찍 일어나 연적을 챙겨 들로 나갔다. 풀잎에 맺힌 이슬을 정성껏 받아 모으기 위함이다. 그는 이 이슬에 먹을 갈아 대소사를 작성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왜 아무 물이나 쓰면 되지 구지 힘들게 새벽이슬을 모아 먹을 갈았을까? 이슬은 비교적 불순물 없는 순수한 물이다. 이런 이슬처럼 사물에 대한 기록도 순수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서였다. 가감이나 왜곡 그리고 호도하지 않으려는 강직한 사관의 정신이 깃든 대목이다. 그는 상부에 보고하는 사실과 진실이니 털끝만큼도 주관이나 편견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다.현실로 돌아와 보자. 이 시대는 언론과 기자의 사태(沙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언론도 많고 기자도 많다는 얘기다. 이런 사태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마는 해도 해도 너무한 감이 없지 않다. 순수성을 상실한지 오랜 언론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언론을 움직여나가는 언론인들이 정론직필의 포부와 열정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니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남은 것은 자신과 자사의 이익뿐이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요즘의 언론이다. 지난 4월7일은 신문의 날이다. 언론인들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명분으로 뭘 농단했는가를 깊이 반성해보자. 이슬에 먹을 갈아 글을 쓰는 심정으로 펜대를 굴려봤는가. 언론의 눈은 심안(心眼)도 영안(靈眼)도 아닌 육안(肉眼)이어야 한다. 그러니 사실을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언론학자들이 "더 이상 매스 미디어는 없다."고 말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매스 미디어 대신 이제는 '딥 미디어(deep media)'가 필요하다. '더 깊이 더 멀리'를 구현할 제작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고 취재·보도방식을 바꾸는 일도 긴요하다. 그러나 신문은 결국 사람 장사다. 사람에게 투자해 깊이 있고 멀리 내다보는 글을 많이 싣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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