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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스팸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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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스팸과의 전쟁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4.12.04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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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캐나다·인도 등 각국은 스팸전화를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미국 국민 72%는 텔레마케팅 거부 시스템(Do Not Call)에 전화번호를 등록하는 스팸전화 차단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업계의 강한 반발 속에서 2003년 시행됐고 2007년 개정 때 사업자 규제가 더 강화됐다. 애초 신청한 뒤 5년마다 갱신해야 했지만 한번만 등록하면 평생 유효하도록 됐다. 이동전화 회사가 고객 정보를 텔레마케팅 업체에 제공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이동전화는 아예 텔레마케팅 전화 자체를 받을 수 없도록 했다.국내 통신 소비자의 권리 보호는 척박하다. 하나로텔레콤은 2006년 고객 51만명의 정보를 텔레마케팅 회사에 팔아넘겼다. 옥션, 에스케이컴즈 등에서 발생한 방대한 개인정보 유출은 온 국민의 신상정보를 공유물로 만들었다. 그 결과는 단순한 텔레마케팅 수준이 아니다. “강원도 사시는 아무개 고객님, 휴대전화 바꾸신 지 24개월 지나서 최신폰 쓰시라고 전화드렸습니다” 식의 신상털기식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대리운전을 한번 이용하면 밤마다 문자 공해를 겪게 되고, 개인정보를 활용한 다양한 사기전화가 괴롭힌다.시도 때도 없이 날아와 짜증나게 하는 스팸이 갈수록 극성이다. 각자 나름대로 차단조치를 해도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느닷없는 스팸수신 신호음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최근에는 스팸을 보내는 수법도 교묘해져 수신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고려한 듯한 맞춤형 광고스팸이 늘고 있다. 정부와 이동통신회사들이 스팸을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미덥지 않다. 그렇게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나 다를까,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정부와 이통사들이 스팸 대응에 최선을 다하는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여러 가지 통계 자료가 나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접수한 스팸문자는 총 987만9516건에 이른다. 신고 스팸만 한 달 평균 141만건을 넘어서니, 전체 스팸이 어느 정도일지 어림하기도 어렵다. 휴대폰이 울린다. 업무 중 본능적으로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댄다. “안녕하세요. ○○사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상품이 출시 됐습니다.” 휴대폰 화면 전화번호 앞에 02가 찍혀 있다.‘또 속았다.’ 사실 이전에도 02가 찍힌 전화가 많이 걸려와 그때마다 받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많이 했다.그러나 업무 중에는 무심코 전화를 받게 된다. 이미 전화는 받았고 일의 흐름은 끊어져 버린다. 그래도 예의상 매몰차게 끊기가 미안해 “아 예, 많이 가입해 있습니다. 다음에 통화하죠, 전화 끊겠…”수화기 너머로 서울말씨의 간드러지는 여성의 목소리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말꼬리를 잡아챈다. “아버니∼임, 이번에 나온 상품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중복보장도 되구요” 개인정보가 온 세상에 노출됐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버님’소리를 들을 때는 헛헛하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고 따져 묻는 것은 입만 아플 뿐 바보짓이다.요즘 02를 앞세운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진지한 회의 중에도 울리고 바쁜 업무 중에도 울린다. 100km를 달리는 고속도로 상의 운전 중에도 울리고 복잡한 시가지 운전 때도 울린다. 밤에도 울리고 낮에도 울리며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울린다.02는 서울의 지역번호. 1980년부터 시외통화 시 통화권이 다른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 부여한 번호다. 당시 지역사람들로서는 02는 서울과 등식으로 통해 이미지가 좋았다. 최근에 와서 이미지가 완전히 깨져버렸다.02가 찍힌 전화의 내용은 대부분 보험이나 대출, 보이스 피싱 등 금융관련 영업이다.보험가입권유를 비롯해 고금리 대출, 금융상품가입권유, 보이스 피싱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콘도미니엄 영업과 1금융권을 사칭한 문자까지 온다.02를 통한 영업의 절정은 자동차보험 갱신 때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달 전부터 02가 찍힌 자동차보험회사의 영업전화가 주야장천 계속된다.02는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다. 02는 막무가내다.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02가 앞에 붙은 전화는 십중 구십, 이런 종류의 전화다. 특별히 서울에 친척이나 연고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지역에서 02로 받는 전화는 대부분 이런 종류다.이런 류의 전화는 지역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시간을 뺏기도 하며 개인의 사생활까지 침해하며 교통사고의 위험을 부르기도한다.그래도 이런 영업이 씨가 먹히는 모양이다. 지역의 엄청난 돈이 블랙홀처럼 서울로 빨려 들어간다는 통계도 있다.이 정도는 양호한 편이다. 그 돈이 우리나라 안에 있으니 말이다.그러나 고금리 불량금융대출에 속아 종국에는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사람들도 많다. 어이없게도 시골할머니들은 보이스 피싱에 속아 전 재산을 잃고 화병으로 자리에 눕기도 한다.그러니 지역사람들의 휴대폰에 02가 뜨는 것은 더 이상 반가운 일이 아니다. 서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기분을 잡치고 무섭다. 02가 뜨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거나 곧바로 끊어버린다. 서울에 친인척이나 연고가 있는 사람도 잘 안 받는다. 친인척끼리라도 02를 버리고 휴대폰으로 통화한다. 이솝 우화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잇단 거짓에 속지 않겠다는 생각이다.02는 최소한 지역사람들에겐 시끄러운 스팸이 돼버렸다.‘02=영업번호=스팸’, 안타깝게도 이제 이런 부정적인 등식이 생겨 버렸다. 02를 쓸모없는 스팸으로 등록해야 할 지경이다. 사생활 침해에다 불편하고 부아까지 치민다. 02 때문에 죄없는 서울사람들까지 통째로 미워진다. 상품영업을 위한 전화번호를 따로 만들든지 서울 사람들이 더 미워지기 전에 스팸 02에 대한 당국의 대책 필요하다. '스팸과의 전쟁'은 각 개인에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정부와 이통업계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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