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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우리 시대 아버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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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우리 시대 아버지상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01.0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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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 황정민ㆍ김윤진 주연의 국제시장은 1950년 6ㆍ25 한국전쟁 이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우리 시대의 아버지(황정민 역)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부모ㆍ형제들을 위해 삶을 살아야 했던 처절한 우리들 아버지의 상을 그려냈다. 국가 시책도 국민의 정서와 일치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로 시작되는 새마을 노래가 유선방송을 통해 아침저녁으로 흘러나오면서 국민운동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어서 경제개발 5개년이란 국정에 국민들도 혼연일체가 돼 독일의 지하탄광으로 월남의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시대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가 죽음을 담보로 벌어들인 외화벌이가 종잣돈이 돼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시대에 따라 아버지상(像)도 변하는 걸까. 영화 ‘국제시장’의 몇 장면과 대사 몇 마디가 가슴을 스친다.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헤어진 어린 덕수는 평생을 오로지 식구들을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쏟는다. 남동생 등록금 때문에 독일 탄광에 다녀온 덕수가 여동생 시집보낼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베트남에 가겠다고 하자 아내 영자는 울먹인다.“왜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당신은 없는 거냐”고. 그러나 덕수의 생각은 이렇다. “그래도 그놈의 전쟁을, 독일 탄광을, 월남에서의 고생을 내가 겪었으니 망정이지 우리 새끼들이 겪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런 덕수지만 외롭고 서러울 땐 아버지 사진 액자를 붙잡고 하소연한다. “아부지예, 내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예….”아버지 세대의 애환을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관객 700만명을 돌파했다. 할아버지가 된 주인공 '덕수'가 6·25 전란 때 흥남부두에서 생이별한 부친의 두루마기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엔딩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이들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동시에 바로 옆 거실에서 덕수 가족들이 노래를 부르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전후 세대의 희생과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정주영, 앙드레 김(김봉남), 남진의 젊은 시절이 등장해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는 박장대소를 할 정도로 코믹한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영화 전편에 흐르는 감성 코드는 애절한 비애와 가슴 찡한 감동이다.우직하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덕수를 보며 부모님을 떠올린 자식들이 많았을 게다. 전쟁 폐허를 딛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산업화·근대화를 이루는 도정에서 부모님 세대는 참 고생 많았다. 덕수처럼 광부로 외화벌이에 나서야 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이국땅 베트남에서 원하지 않는 전투도 벌여야 했다.처음부터 아버지였던 사람은 없다. 세상 모든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다.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아버지도 가끔은 한없이 약해지고 작아져서 누군가의 아들이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세상이 시끄러우면 /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건만 여전히 대접을 못 받고 산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큰소리 한번 못 친다. 특히 가정에서 그렇다. 잘된 것은 제가 잘나서고 잘못된 것은 모두 아버지 탓이다. 가부장으로서 권위는 사라진 지 옛날이고 책임만 남았다. 가르침이 없는 가정, 배울 것이 없는 집안이 돼버렸다.지난해엔 유난히도 자식 때문에 고개 숙이고 가슴을 쳐야 했던 아버지가 많았다. 서울시장 후보도, 교육감 후보도, 경기도지사도, 어느 배우도 아들딸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자식 교육을 잘못한 탓이고 불찰이라며 사과해야 했다.결국은 교육이다. 공교육은 이미 무너졌다 하고, 가정교육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교육이 안 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가정이 바로 서지 못하는 사회가 튼튼할 리 없는 것이다. 아버지 부재, 부성·부권 실종 시대다. 아버지 역할의 상당 부분은 아내에게 넘어가 버렸다. 시간적·정신적·육체적으로 아버지란 사람은 쫓기고 시달리고 피곤할 수밖에 없다.이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주어야 한다. 24시간 매여 있고 묶여 있고 눈치 보는 아버지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못난 아버지와 잘난 자식이 밥상 앞에 함께 앉아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발견’되고 아버지가 살아난다. 가정교육은 그때 비로소 자리 잡을 것이다.‘아버지의 가치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 알 수 있고, 소금의 가치는 그것이 떨어지면 알 수 있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남아시아 민족 타밀족의 속담이다. 또 러시아에는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가져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하다’는 속담이 있다.80세 이상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8·15 광복, 6·25전쟁, 유신정권, IMF 외환위기 등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를 겪었다. 일부는 파독 광부, 월남파병, 중동 근로자, 산업역군 등으로 ‘조국근대화’에 기여했다. 학력이 낮거나 기술이 없는 사람들은 단순노동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들 세대는 퇴직 이후에도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자신보다는 가족과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희생’을 해야 할 팔자를 타고났기에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했다.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국제시장’이 관람객 800만명을 뛰어넘으며 1000만 관객을 향해 순항을 하고 있다.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부산시 남포동 국제시장을 찾는 인파도 크게 증가했다고 한다. 흥행 돌풍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이야기가 중장년층은 물론 2030세대의 공감을 얻으며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공경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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