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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 서길원 칼럼- '고토 겐지'와 '아베', 그리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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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6] 서길원 칼럼- '고토 겐지'와 '아베', 그리고 일본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5.02.11 0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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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언론인 고토 겐지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직시한 정면은 증오와 폭력과 전쟁으로 가득 찬 지구촌의 현실이었다. 그 어두운 현실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이었다.현실화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당당하고자 했던 한 언론인을 기억하고자 한다.

기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그의 형형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지난 1일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살해된 일본 프리랜서 언론인 고토 겐지(47).

동영상에서 그는 살해되기에 앞서 지난달 20일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채 또 다른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42)씨와 함께 복면을 한 IS 대원을 사이에 두고 무릎 꿇린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지금도 선하게 남아 내게 질문을 던진다. 그가 죽음의 순간까지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바라보던 정면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무엇을 보기위해 죽음을 넘어섰던 것일까. 그가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정면이 카메라 렌즈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바라보던 정면은 어쩌면 우리가 외면하거나 잊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언론인 고토 겐지가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직시한 정면은 증오와 폭력과 전쟁으로 가득 찬 지구촌의 현실이었다. 그 어두운 현실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이었다.고토의 죽음 후에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의 눈 깜박임이 모스 부호로 ‘나를 구하지 마라’라는 최후 메시지였다는 의견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눈 깜박임이 모스 부호였거나 아니면 모레바람의 영향이었거나 간에 그의 눈빛은 그의 삶의 괘적과 함께 빛나고 있다.고토 겐지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권과 평화 등을 테마로 중동,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와 전쟁이 일상화된 지역에서 취재활동을 해온 프리랜스 언론인이다. 그는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편견 없이 보도를 해 온 언론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특히 그의 시선은 분쟁이나 전투 자체보다 그 속에서 신음하거나 소년병이 되길 강요당한 아이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라크 전쟁 때는 전투가 끝나고 치안이 악화돼 대부분의 기자들이 떠난 뒤에도 현지에 남아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바깥세상에 알리고자 했다. 또 시리아 내전 현장을 취재할 때는 현지 어린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확인 한 뒤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어 기부하기도 했다.아프리카 소년병의 이야기를 담은 ‘다이야몬드보다 평화가 좋아요’나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소녀의 이야기인 ‘에이즈 마을에 태어나’, 내전 속에 살아가는 가족을 그린 ‘르완다의 기도’, 아프가니스탄의 소녀가 주인공인 ‘만약 학교에 갈 수 있다면’등은 그가 무엇에 천착해왔던가를 보여주는 저술들이다.

그의 한 지인은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시리아에서 환영받는 존재였으며, 특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기억했다.이렇게 열정적인 보도와 다양한 활동으로 이슬람 세력의 신뢰를 얻은 그는 지난해 10월 시리아의 IS 거점 지역으로 들어갔다. IS 장악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연락이 끊기기 전 마지막 영상에서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시리아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며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일본의 여러분도 시리아 사람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그의 둘째 딸이 태어난 지 2주쯤 됐을 때였다. 그 뒤 그는 실종됐고 인질이 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인 고토 겐지는 그리고 살해됐다.사랑하는 이를 잃은 비극 앞에서 그의 가족들 역시 의연했다. 그의 아내는 “분쟁지역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전해 온 남편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팔순을 눈 앞에 둔 그의 노모는 인질로 무릎 꿇고 있던 고토의 시선보다 더 의연했다. 78세의 노모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면서도 “ ‘전쟁과 빈곤에서 아이들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는 겐지의 유지를 이어가고 싶다”며 “슬픔이 증오의 연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와는 반대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번 비극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며 집단적자위권의 범위 확대와 자위대의 해외 무력사용 등의 지렛대로 삼을 모양이다. 아베 정권의 행태는 마치 일본인 인질 2명의 죽음을 오히려 기다렸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한다. 고토 겐지가 참수된 바로 뒤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한 아베 총리는 "세계 곳곳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는 일본 비정부 기구(NGO) 요원들이 위험에 빠질 경우 자위대가 무기를 사용해 구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아베는 '경찰권'이란 수상쩍은 용어를 써가며 평화헌법에서 엄격히 규정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을 고무줄처럼 늘리려는 모습이다. 전 세계 어디든지 일본 자위대 파병 길을 넓히려는 일본 우파의 속내가 드러난다.하지만 슬픔이 증오로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믿는 이러한 일본의 국민들이 있는 한 아베의 꿈은 쉽게 이뤄질 성질만은 아닐 성 싶다. 언론인 고토 겐지의 형형한 눈빛이 미움과 증오가 있는 곳에 평화의 빛이 되길 바라며 명복을 빌고자 한다. 아울러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의 유가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하고 싶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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