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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주의' 현실적 보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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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책주의' 현실적 보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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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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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이 깨지는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소송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7명은 잘못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파탄주의 전환이 현단계에서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다만,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 등 6명은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제도뿐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 제도를 택하고 있어 잘못이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이혼 가운데 77.7%에 해당하는 이혼이 협의이혼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과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제도 등을 두는 등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무런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겨 공개변론을 여는 등 변화된 상황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숙고했다. 결론은 결혼생활이 사실상 파탄 상황일 때 어느 쪽의 책임인지를 제한하지 않고 이혼 청구를 가능케 하는 파탄주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기각 판결 이유를 보면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파탄주의를 채택한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가혹조항'과 '부양제도'가 입법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은 사정을 말한다. 가혹조항은 이혼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고, 부양 제도는 이혼 후 부양료를 청구할 권리를 말한다. 우리나라 민법은 부양료 청구권 제도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파탄주의가 도입되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을 길이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또 간통죄 폐지도 기존 판례를 유지토록 판단하는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간통죄를 폐지한 사유가 사생활 침해 등에 초점에 맞춰졌던 것을 돌이켜보면 일종의 역설이긴 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간통죄 폐지로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막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허용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전원 일치가 아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중 7명이 기존 판례의 고수에 손을 들었고, 나머지 6명의 대법관은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이었다. 그만큼 찬반 양론이 팽팽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이번 판결에서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 예외기준을 28년 만에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국 이 문제의 바탕에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언제까지 사법적 기능으로 제한하는 게 가능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책주의냐 파탄주의냐에 매달리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결과가 예정돼 있다면 그에 필요한 입법적 보완이 미리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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