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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그리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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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그리운 것은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5.09.22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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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온천 에선 아직도 5일 장이 서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장날에는 닷새 동안 지어 놓은 가마니를 짊어지고 혹은 손수레에 실어서 팔러가는 날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씨암탉이 낳은 달걀을 몇 꾸러미 정성껏 엮어서 들고 가던가, 혹은 얼마 전에 따서 말린 고추나 참깨. 또는 들깨나 콩 등, 그도 아니면 맨 손으로라도 지난 밤 숯불 다리미로 정성껏 다려 놓은 두루마기에 모처럼 닦아 말린 흰 고무신을 선반위에서 내 신고 아침 이슬 내린 좁은 길을 걸어서 어른들은 그렇게 장에들 가시곤 했다. 기자가 어릴 적엔 그랬다.
추석 명절이 하루하루 다가 오면서 중천에 뜬 아직 덜 찬 달을 보고 있자니, 그 5일마다 서던 내 고향 온천장날이 생각난다. 그것도 명절 코앞에 다가 온 대목 장날 생각이 새롭다. 한 해 동안 수없이 서는 장날 중에서도 제일 크게 서는 장날이 대목 장날인데 지금은 아마도 그 추억 찾기는 어려우리라.
설날이 다가오는 대목 장날도 그랬지만 특히나 추석 대목 장날은 어머니 아버지 장에 가셨다가 언제 오시나 모둠발을 하고 먼 길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정경이 그리워진다. 새 신발도 신어보고 싶고, 새 옷도 입어보고 싶어 온통 기대에 부푼 날이다. 입에 넣으면 십리를 간다는 십리사탕과 과자 부스러기는 덤이었다.
비록 검정 고무신이지만 새로 사온 신발을 신고 싶어 행여 덜 달았다고 거를까 봐 대목장이 오기 전에 시멘트 바닥에 직직 끌며 험하게 신어 고무신을 헐구던 생각에 홀로 우습다. 지금 아무리 새 신발을 신고 싶다고 해도 그런 악동들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그 대목장에 어른들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베신도 직접 신어보고 고를 수 있고 옷도 적당히 맞는 치수를 챙기고 돼지비계가 몇 점 떠있는 장터 국밥도 한 그릇 먹을 수 있어 좋았다. 여기다 좀처럼 맛 볼 수 없는 찐빵과 풀빵은 빼놓을 수 없는 특식이었다.
온천장만 해도 기자가 살던 송촌이라는 마을과 환경이 다른 도회지 분위가 없지 않았던 터라 볼거리가 제법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대목 장날엔 평소 보기 힘든 갖가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와 있어 이것들을 구경하며 다니는 재미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장터 빈 곳에 엿장수 풍물패의 걸죽한 입담과 진한 농담은 그중 발길을 붙잡는 재미거리였다.
가는데 10여 리, 오는데 10여 리, 합해 20여리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녀 종아리가 굳고 발바닥이 부르틀 만큼 고통스럽긴 해도 그렇게 어렵게 다녀오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꺼리도 생겨 우쭐해지기도 했다.
비록 인원이 넘쳐 터질 듯한 버스를 호령하는 차장 누나의 팔힘에 의지한 달구지에 비할만한 콩나물시루 버스지만 비포장도로를 이리 뒤뚱 저리 뒤뚱 멀미에 고생도 많이 했었다.
길바닥에 전을 펴고 머리가 백발이 된 할머니 들이 풋나물하며 이것저것 팔아 천 원짜리 몇 장을 바지속 고쟁이 줌치에 꼭꼭 집어넣고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꼬부랑 허리로 집으로 향하는 모습도 짠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그 할머니는 몇 푼 안되는 그 돈을 이번 추석날 큰소리로 할머니라고 부르며 단 숨에 뛰어 안길 손주 손녀들 용돈으로 준비하고 계셨을 것이다.
아마도 내고향 온천엔 아직도 대목장이 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같이 성시를 이루진 못하겠지만 추석 큰 명절을 며칠 남겨 놓은 때이고 보면 옛 추억에 끌려서라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일없이 시장 곳곳을 서성이는 모습이 눈에 띌 듯싶기도 하다.
대목장에 가셨다가 어머니는 먼저 돌아오시고 이웃 동네 친구 분이라도 만나 대포라도 한 잔 걸죽히 마신 아버지께서는 중천에 뜬 달빛을 동무하여 한 곡조 흥얼거리며 늦게 돌아오시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명절이라고 해야 옛날 정취에 햇곡식에 새 옷까지 호의호식 하던 포만감은 못하겠지만 온 민족이 함께 즐기고 한 마음으로 쇠는 날 이고 보면 결코 무의미한 연휴만은 아닐 성 싶다.
우리 속담에 ‘더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매일 매일이 한가윗날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말일 것이다. 추석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고, 이날은 많은 음식을 장만해 잘 먹고, 즐거운 놀이를 하며 놀게 되므로 늘 이날만 같았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것이다.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일에 시달린 당시 민중의 소박한 소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오늘따라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이처럼 옛날이 그리운 것은 아마도 이미 이 만큼 와 있는 세월과 친구가 되었음이리라.
고향 가시는 전국매일신문 독자 여러분들 안전 운전 하시고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형제 친지들과 즐겁고 행복한 명절 되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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