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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역행하는 블랙데이 성공여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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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역행하는 블랙데이 성공여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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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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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지난 1일 시작됐지만, 실제 유통가에는 '재고떨이' 이월상품만 가득해 소비자들로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정부 주도로 마련된 탓에 유통업체마다 이월상품을 잔뜩 펼쳐놓고 '슈퍼 세일'을 하는 시늉만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정부 방침에 맞춰 백화점, 마트, 전통시장 등이 대거 참여한 '코리아 그랜드 세일' 기간에 또 정부가 블랙프라이데이를 기획하자 업체나 소비자들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위기다. 한 브랜드 관계자는 "신상품은 브랜드마다 마진을 충분히 분석해서 할인율을 정해 행사를 한다"며 "정부가 갑자기 추가로 할인하라고 하는데 밑지고 장사하라는 얘기냐"고 되물었다. 대부분 브랜드는 신상품 할인율은 그대로 유지한 채 이월상품 소진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는 평소에 엄두를 내기 어려운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명품 패션류 등을 파격적인 가격에 살 좋은 기회인 반면 이번 행사에서는 정기세일이 아닌 때도 비교적 높은 할인율이 적용되는 제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이 아까운, 살 게 없는 행사'라는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부가 이번 행사를 기획한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내수 진작을 통해 경기 선순환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여파에서 벗어나 소비가 조금씩 살아나는 만큼 그 불씨를 살려나가겠다는 취지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문제는 미국과 사정이 다른 우리나라에 블랙프라이데이를 억지로 꿰맞추려다 보니 효과는 미미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함만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행사 개최가 지난 8월 갑작스럽게 결정돼 꼼꼼한 사전 검토나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후 한 달여 만에 행사가 열렸으니 준비도 미흡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11월 말 시작되는 미국의 경우 제조업체들이 연말 재고 소진과 이듬해 신상품 판매를 위해 자발적으로 파격 할인에 나서지만 우리는 이런 행사가 유통업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다 10월 초는 올해 상품을 떨이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이르다. 기업들은 오히려 이 행사로 김이 빠져 연말 특수가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로서도 추석은 지났고 연말은 3개월이나 남아 있어 구매욕구가 크지 않다. 중국의 국경절에 맞춰 행사 기간을 정했다고 하지만 외국인을 겨냥한 쇼핑 이벤트는 이미 '코리아 그랜드 세일'이 있다. 정부가 소비자와 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이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이 필요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행사가 정부 주도라는 것이다. 이런 세일 행사는 시장에서 실제로 물건을 사고팔 주체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그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대두될 때 흥행에 성공한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문화체육관광부, 중소기업청 등 관련 부처가 구체적인 할인혜택까지 논의했다고 하는데 이런 발상 자체가 관료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경제가 어려운 만큼 다소 무리해서라도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생각이겠지만 시장경제의 원리를 거스르는 관 주도의 전시성 행사는 지속되기 어려워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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