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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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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박희경 지방부국장, 포항담당
  • 승인 2015.10.13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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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문득 찬장 깊숙이 걸려 있는 녹 쓴 구두 주걱이 눈에 뛴다. 어제도 그제도 이곳에서 물건을 꺼냈지만 유독 오늘 따라 눈에 들어온 것은 왜일까. 새삼 어머니 생각에 출근길 발걸음이 무겁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출근을 재촉했다. 시청 기자실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서랍에 꽂혀 있는 책 한권이 눈에 띈다. 예사롭게 보이질 않는다. ‘뜨거운 안녕’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옆 자리 후배 기자가 갖다 놓은 모양이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뭔가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치민다. 어머니를 주제로 한 글이 수두룩 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칼럼의 콘셉트가 정해졌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을 접어둔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참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어찌 그리 나와 꼭 같은지, 어찌그리 내 마음인지...코끝이 찡하다. 글씨가 흐려진다. 아닌 척 흡연실로 향한다. 길게 내뱉는 담배연기로는 안될 모양이다. 왜 이리 햇살마저 화창한지, 날씨 핑계도 대지 못할 것 같다. 간신히 추스린 마음이 다시 아침 출근 전 그 맘이다. 녹 쓴 구두주걱, 남들이 보면 어디에도 쓸데없는 하챦은 물건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기자에게 이 구두주걱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아마 죽는 날 까지 그곳에 걸려 있을 것이다.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머리맡 소쿠리에서 발견된 유품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흐릿해져 읽을 수 없는 뭔가가 쓰여져 있다. 비록 차가운 금속에 불과 하지만 나에게는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소중한 것이다. 그래서 깊숙한 그곳에 숨기듯 걸어놓았다. 문득 오래전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옛날에 어느 스승과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고자 길을 떠났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무엇일가 논하며 길을 가다 어느 한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변고가 있었는지 그 마을에는 사람의 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수많은 인골이 얽히고설킨 모습을 바라보던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 가운데서 여자의 뼈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 여자의 뼈를 선뜻 가려낼 수가 없었다. 그 때, 스승은 뼈 하나를 집어 들고는 이것이 여자의 뼈라고 말했다. 제자들은 이 수많은 뼈 중에 여자의 뼈를 어떻게 그리 쉽게 알 수 있느냐고 물었다. 스승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먼저, 여자의 삶을 한번 생각해보아라. 결혼을 해서 아기를 가지게 되면 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양분을 아기에게 나눠주게 되고, 아기를 낳을 때에도 자신의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 나아가 아기를 낳아서는 젖을 물릴 때, 자기 몸속에 있는 모든 영양분을 아기에게 먹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니 여자의 살은 물론이고 뼈 속에 양분이 남아있을 리가 있겠느냐? 여자의 이와 같은 쓰디쓴 삶이, 여자의 뼈를 이처럼 가볍고 검게 만들었느니라' 스승의 말을 듣고 난 제자들은 모두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머니라는 이의 인생이 과연 그렇구나. 모든 것을 다 주시기만 하셨지 당신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구나' 이런 깨달음에 일행은 잠시 숙연해졌다. 자녀를 잉태하고 낳고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녀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자신의 뼈 속에 있는 골수까지도 다 뽑아서 주는 존재가 어머니다 보니 그 뼈가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스승의 말에 제자들은 큰 감동을 받고 모두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내 자식이 당신 자식만 했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는 나에게 부족함을 늘 숨기셨다. 그래서 우리 집엔 없는 게 없는 줄로만 알았다. 육성회비도, 등록금도 하루를 거르시는 적이 없었다. 소풍 때 쪄주신 계란은 친구들과 나누어 먹을 만큼 충분했다. 정말 어머니는 그랬다.

어머니는 늘 자식을 향한 희생 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그래서 더 서럽고 애닮다. 늘 하는 후회지만 오늘 새삼 또 때 늦은 후회를 한다. 지금 와서 그리움이 이토록 사무칠 줄도 몰랐다. 뻥린 가슴, 어디서도 메울 길이 없다. 지금도 나는 간간히 떠오르는 그리움에 눈엔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때론 불어오는 산들 바람에도 그리움은 불쑥 떠오르고, 붉게 지는 저녁노을에도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뜨거운 안녕’ 이 책 몇 문장을 옮겨와 졸필을 맺으려 한다. 필자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전한다.

 “일부 사람들은 저보고 효자라고 합니다. 난 천하의 불효자입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해 드린게 없습니다. 어머니가 부쩍 외로움을 느끼는 것을 알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천 날 만날, 아니 평생을 사사는 줄만 알고 미루기만 했습니다. (중략)우리는 때로 착각합니다. 어머니는 원래 그렇다고, 아닙니다. 우리가 어머니에게 얻은 모든 좋은 것들은 원래 그래서, 자연이 심어준 모성애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모성애 위에 한 인간으로서의 놀라운 의지와 아량을 통해서 휼륭한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입니다. (중략) 이런 어머니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영하와 정신적 성취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전철을 밟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수시로 실천 하십시오. 절대 미루지 마십시오. 뒤늦은 통곡과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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