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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역사 바로잡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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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역사 바로잡기여야 한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10.22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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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과잉 시대가 열렸다. 역사가 과거를 우상화하거나 혹은 과거를 부정해버리기 위한 도구로 불려 나와 우리의 삶을 옥죈다. 국정교과서라 불리는 이 ‘역사병’은 권력이 원하는 대로 세상살이의 다양한 사건들을 지워버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만으로 현재를 재단한다. 정확히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다. 국정교과서 논란 이야기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찬성한다는 응답과 반대한다는 응답이 각각 42%로 동률을 이뤘다.
거리에는 여야 간에 국정화 찬반 플랭카드가 자리싸움을 하고 있고, 대학교수들도 성명전에 가세했다. 대다수 역사학자와 교사들은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지만, 찬성의 목소리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이런 와중에 여당 대표는 “대한민국 국사학자의 90%가 좌파”라는 주장까지 내놓아 파장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교육계와 정치권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모양새다. 또다시 정부여당이 내놓은 이슈가 우리 사회를 장악한 셈이다.
근현대사 교육에 대한 반성이 제기된 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부터였다. 5.16 쿠데타와 유신을 미화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데 일조했던 교육이, 이제는 바로서야 한다는 일선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의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검정교과서는 획일화된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도입됐다.
국정교과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검정교과서의 편향된 시각을 문제삼는다. 하지만 “주체사상을 가르친다”는 현행 검정교과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교육이 편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검정교과서에 대해 또다시 편향논란이 제기되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후대의 자손들에게 맡겨야 할 역사평가에 정부가 개입하려 들어서는 안되고 개입할 실효성도 없다. 국정교과서가 한번 도입되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과서 서술은 널뛰기를 할 것이다. 어제의 상식이 오늘은 금기가 될 수 있다. 교육 현장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일 것이고 세대간의 역사인식 간극은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한국사회는 위기다. 경제성장의 동력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고,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빈부격차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노년층의 빈곤률은 OECD 최고 수준이다. 이제는 경제성장률 3% 달성도 쉽지 않은 시대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국정교과서 채택에 올인해 사회적으로 논란만 키우는 것은 국력의 낭비다.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할 일은 우리 사회의 위기탈출을 위해 올바른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요즘은 아니지만 학력고사 시절. 비행기 이륙시간까지 바꾼 무소불위의 학력고사 점수를 발표한 날이면 신문과 TV마다 그 해 만점자나 최고점수자 인터뷰로 도배했다.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한결 같았다. "충분히 잠을 잤고 교과서에 충실히 공부했습니다." 충분히 잠을 자지도, 교과서를 충실히 공부하지도 않은 수십만 명의 입시생들은 돌아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니들 잘났다."
그렇게 잘난 최고점자들은 대부분 SKY를 위시한 명문대에 수석 입학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또 출세의 탄탄대로인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교과서 공부에는 도를 튼 사람들이니, 육법전서를 달 달 외우는 정도야 누워서 식은 죽 먹기다. 판사나 검사, 변호사, 정부 고위 관료 등으로 변신한 최고점자들은 길은 달랐지만 훗날 하나의 무대에서 만난다. 정치권이다.
다들 하나의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분들인지라 정치권 입지도 비슷하다. 정부 여당인 새누리당은 한나라당 시절 법조당으로 불렸다. 그만큼 법조인 출신들이 많다는 비아냥 이다.
18대 국회의 경우 새누리당의 법조인 금배지는 정당인 출신 보다 많아 직업군 1위를 기록했다. 19대 들어 수가 줄었지만 가문의 위세는 죽지 않았다. 교육부 장관과 대한민국 사회부총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황우여 국회의원도 판사 출신이다. 황 부총리는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017년 중·고교 신입생부터 적용하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계획을 발표했다. 가칭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는 신어가 나온다. 신어에 따르면 전쟁은 평화이고 자유는 예속이며 불의는 정의다.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은 보이지 않는 당의 지시를 받아 신어를 활용해 과거를 수정하는 작업에 종사한다. 과거 조작은 간단하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논리에 따라 각종 문서나 신문, 서적, 영화 등의 모든 과거 기록을 고치고 다시 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도 포장은 요란하지만 결국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과거사 책동이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미래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만약 과거사 다시 쓰기를 즐기는 일본의 아베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면 한국은 뭐라 할까.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부정적 측면이 없는 시대는 없다. 그리고 부정적 측면도 엄연한 역사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만 확대해 우리 역사가 마치 퇴보를 거듭하는 양 억지를 부려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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