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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진실과 정의를 독점하는 자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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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진실과 정의를 독점하는 자리가 아니다”
  • 호남취재본부/ 서길원기자
  • 승인 2015.12.09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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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듯 하지만 박 대통령의 언어에는 늘상 격정이 실려 있다. 그 격정은 진실이고 정의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는 독점될 때 오히려 진실을 잃고 불의가 된다.-
 

대통령의 언어가 갈수록 단호해지고 있다. 그런 대통령 앞에서 여당은 공손하기 그지없고 야당은 존재감마저 찾을 수 없다. 세밑 대한민국 정치 기상도는 대통령의 강한 저기압에 둘려쌓여 있다.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의 언어는 잘못한 학생을 앞에 둔 선생님의 말씀을 닮아가고 있다. 젊잖은 꾸중과 타이름이다. 여당은 그런 선생님의 질책 앞에 언제나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야당은 반발만 할 뿐이다.
언어의 질감에 차이가 있을 뿐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 올리게 한다. 노 전 대통령도 언어에 항상 격정이 실려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라는 말은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 사이에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서울대 나온 사람들은 다 그러느냐?”는 그의 꾸중을 들은 한 기업가는 삶의 길을 버렸다. 당시 어느 언론은 대통령의 이런 정제되지 않는 언어를 열거하며 ‘오럴 해저드’라고 비꼬기도 했다.
정제된 듯 하지만 박 대통령의 언어에는 늘상 격정이 실려 있다. 그 격정은 진실이고 정의라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과 정의는 독점될 때 오히려 진실을 잃고 불의가 된다. 열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충분히 배웠다. 그 것은 교훈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의 언어가 국민들에게 깊게 각인된 것은 국회법 파동 때부터다.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칭하며 ‘배신의 정치’라는 격정적인 언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그런 사람을 심판해달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의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진실된 사람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대통령의 ‘진실’이나 ‘배신’ 같은 단어는 본인의 기준일 뿐이다. 대통령이 진실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배신자 일수도 있고, 대통령이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한 사람이 될 수 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에 대해서도 진실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대통령이 며칠 전에는 여당 지도부를 만나 “내년에 선거를 치러야 되는데 정말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고 꾸중했다. 경제 활성화 법안과 노동개혁 5개 법안 등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데 따른 불만이다.
대통령은 “(노동개혁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다 죽고 난 다음에 살릴 수 있느냐?”라거나 “(경제살리기를)걱정하고 한숨만 쉰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냐?”는 말도 했다.
대통령의 국민을 위한 마음과 다급한 실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이번 연말이 경제성장의 토대를 만들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있을 테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IS의 테러에 대비한 입법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선생님이 아니고  국회가 학교가 아닌 이상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국회를 존중하고 국회의 결정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국회는 타협의 장이기 때문이다.
법안의 취지가 아무리 정당하고 국민을 위하는 명분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찬반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찬반을 조율하고 타협해 내는 것이 정치이고 국회의 존재가치이다. 설마 대통령도 찬반 없이 명분이 옳다하여 “옳소!”라고 외치는 것을 원하는 아닐 것이다.  
더욱이 대통령은 야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협조나 이해도 구하지 않았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만 불러서 이야기 하듯 여당 지도부에게만 당부했다. 야당이 일부 법안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야당을 유령 취급하는 듯하다. 당구용어를 사용하자면 ‘쓰리큐션’화법이다. 여당에게 하는 말이 증폭돼 야당에게 전달되는 효과를 보고자 하는지는 모르겠다. 대통령은 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면 여당 못지않게 야당 지도부를 불러 설득하고 협조를 당부해야 한다.
야당이 아무리 무기력하고 자중지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조롱거리가 되고 있더라도 정국 운영의 설득과 이해의 파트너는 야당이다. 야당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다. 반발의 강도가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야당의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국정운영의 부담이기도 하다. 
부담스러운 제안이지만 대통령은 자신만큼, 야당도 진실하고 정의롭다고 인정해야 한다. 그럴 때 진실과 정의는 소통되는 것이다. 소통되지 않는 야당의 한 편에는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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