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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저승에 함께 가져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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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저승에 함께 가져갈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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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07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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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평생을 부자로 사신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저승에 도착하여 방키를 받고 들어가보니 달랑 짚 한단과 돼지죽 한 그릇이 덩그라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옆방의 17세 규수의 방에는 쌀과 과일이 한가득합니다. 이를 본 부자 할아버지가 저승사자에게 큰소리로 항의하였습니다. 이에 저승 방 관리자가 답하기를 이생에서 남에게 베푼 것이 그대로 복사되어 팩스로 왔으므로 그대로 전해드릴 뿐이라 답했습니다.

아마도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팩스와 광케이블이 있어서 자료를 업데이트하여 함께 보내주거나 도착 전에 벌써 이메일이 당도하여 방 배정 담당자들이 리스트를 작성하여 방을 관리하는 직원에게 메모를 보내는가 봅니다. 노인이 자신에 대한 메모를 살펴보면서 이승에 살면서 단 두 번, 남에게 무엇인가를 던져 준 기억이 났습니다.

한번은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낳도록 도와달라는 청을 받고는 마구간에 짚 한 단을 넣어주면서 여기에서 解産(해산)을 하라고 했답니다. 이것도 도움이라 평가를 해서 저승으로 보내는 메모에 전달되었다 합니다. 두 번째로는 어느 겨울날 아침 이른 시각에 돼지죽을 주기 위해 대문을 나서는데 스님께서 托鉢(탁발)을 오신 겁니다. 탁발이란 스님의 수행방법중 하나입니다. 민가에 나가서 음식이나 쌀 등 음식재료를 얻어와서 수도중인 스님들의 식사에 도움을 주는 몸으로 실천하는 수양의 여정이라 합니다.

노인은 새벽 탁발을 오신 스님에게 재수 없다면서 들고 있던 돼지죽을 내던져서 스님 옷을 모두 적셨는데 그래도 이 또한 普施(보시)로 평가받아 메모장에 기재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의 방에는 짚 한 단과 돼지죽 한 그릇이 배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20살을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규수에게는 어찌 많은 쌀과 과일이 배정되었을까요. 규수는 어머니로부터 어려운 이웃이 오면 쌀을 내어드리라는 가정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탁발을 오시거나 걸인이 동냥을 청하면 표주박 한가득 흰 쌀을 퍼서 내드렸습니다. 배고픈 이가 찾아오면 밥솥안에 보관중인 따스한 밥을 내어 드렸고 더러는 과일 한 두개를 함께 전했습니다.

규수가 다른 이에게 베푼 쌀과 곡식과 과일은 이자에 이자가 복리로 붙어서 저승의 방에 배정되어 전달된 것입니다. 결국 이승과 저승사이를 연결하는 행복의 고리는 이승에서 남에게 베푼 것이었습니다. 이승에서 자신이 취한 재물은 전혀 가져가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망자에게 쌀을 먹이면서 만석이요, 이만석이요, 삼만석이요 합니다. 10원짜리 동전을 넣어 드리면서 1만냥이요, 2만냥! 3만냥이라 합니다.

결국 인간이 살면서 지닌 것은 모두 반납하고 영혼만이 저승으로 떠나가는 것인 줄 알면서도 욕심을 내나 봅니다. 살면서 내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고 남을 위해 베풀고 봉사하는 것은 더욱 소중한 이유를 깨닫게 합니다. 壽衣(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염습할 때 옹매듭을 합니다. 망자의 묶음은 풀어볼 일도 풀어줄 경우도 없는 일이고 주머니가 있어도 가져갈 것이 없으니 수의에 주머니를 달아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승으로 가져가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이를 다른 이에게 베풀고 사회에 환원하고 기부해야 합니다. 이승에서는 남의 것을 빼앗아 일시적으로 내 것으로 할 수 있지만 저승길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부도수표가 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이 결국 자신을 最愛(최애)하는 일임을 일깨워주는 옛 이야기였습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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