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칼럼] 40세 이후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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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칼럼] 40세 이후의 얼굴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0.06.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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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고등학교 1학년때 야생초라는 문학모임이 생겨났습니다. 3년내내 문예반 특별활동을 하였고 시조시인 유선 선생님의 지도를 받았고 3학년 1학기에는 경희대학교 학도호국단 주최 전국 남녀고교생 백일장에서 ‘코’라는 제목의 수필로 4등 참방상을 받았습니다.

그날 조병화 시인을 처음 뵈었습니다. 장원, 차상, 차하, 참방. 예상하지 못한 시골 중학교 출신 고등학생의 전국고등학생 백일장대회 참방상 수상에 학교측에서도 놀랐습니다만 그해 예산 부족으로 교지를 만들지 않아서 4등 작품 글은 머릿속에만 남았습니다.

나의 코는 예쁘지 않아서 어려서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화장실 등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코를 계속 잡아당기면 더 길어지고 멋진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실제로 여러 번 당겨보았습니다. 하지만 코는 늘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고 크게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초등학생때보다 고등학생이 되니 코가 조금은 커진 것 같고 입술을 쑥 내밀면 콧구멍이 조금 가려지면서 그런대로 볼만한 보습이 되기는 하지만 접힌 입 모양을 다시 복원하면 역시나 본래의 코로 돌아가곤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든 코든 나에게 주어진 육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고 이를 어찌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자는 생각을 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공자는 "무릇 효란 덕의 근본이요, 가르침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끝이다. 무릇 효는 부모를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임금을 섬기는 과정을 거쳐 몸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다"라 가르치셨습니다. 1895년에 일제에 의해 단발령이라는 것이 내려졌지만 선비들은 ‘손발은 자를지언정 두발(頭髮)을 자를 수는 없다’고 분개하여 단발령에 완강하게 반대한 역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40대 이후의 얼굴 모습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세간의 말에 큰 공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그에 나오는 유단자는 단증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요. 검은띠 4단쯤 되면 태권도 이야기가 나와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프로 권투선수가 불량배를 만나 몇 대 맞았다고 하는 뉴스 말미에 “한방 치면 상대가 죽을 수도 있기에 참았다”는 복서의 인터뷰 기사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마음속으로 참고 견디며 사는 이가 많고 선배들도 살면서 참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충고를 하십니다. 나아가서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게 살면 내면의 아름다움이 밖으로 표출되어서 40대 이후부터 멋스러워지는 것이고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이라도 나이들어 마음속에서 욕심을 내고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생을 살면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투영된다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잘 생긴 것은 아닌데 멋진 사람을 만나고 얼굴은 잘생긴 것 같은데 전체 분위기가 영 아닌듯한 분도 접하게 됩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얼굴이 각지고 수려해도 마음속 偏狹(편협)함에서 올라와 얼굴에 나타나는 작은 그림자를 지우는 화장품은 아직 발명되기 전인가 생각합니다. 설령 그런 화장품이 출시되어도 아침에 일어나 거울로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서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 얼굴을 환하게 하고 늘 웃고 평온한 마음을 먹으며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자 합니다. 다른 이를 비난하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배려와 보살핌이 필요하겠습니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이강석 前 남양주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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