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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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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테스형 세상이 왜이래’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0.09.24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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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얼마 전 지인이 ‘테스 형’을 아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모른다는 대답이었고 ‘테스 형’이 누구냐고 되물었다. 대답은 나훈아씨가 2020년 8월20일 발표한 노래 제목이 ‘테스 형’이라는 것이다.

나훈아씨는 히트곡 제조기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유명한 가수이다. 그런 나훈아씨는 알겠지만 ‘테스 형’까지 알기에는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정보와 상식이 부족했던 것이었다.

순간 소크라테스를 말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는 제목으로 나훈아씨가 직접 곡을 쓰고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고 한국 사람도 웬만하면 알 수 있는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르다니 조금은 우습기도 하고 호기심도 갔다.

유튜브를 통해 노랫말과 음을 확인하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을 철학적으로 설명한 노래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을 노래한 것인가? 여러 가지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살기 어려운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가사에 담았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훈아씨는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나 1966년 열 아홉 살의 나이에 ‘천리길’이라는 노래로 데뷔했다. 올해 73세의 노령이지만 ‘영영’ ‘울긴 왜 울어’ ‘고향 역’ ‘대동강 편지’ ‘해변의 여인’ 등 수 많은 히트곡을 생산했고 아직도 국민들 가슴속에서 잊혀 지지 않는 살아 있는 전설이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는 지금도 변함없이 불려진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 그리스에서 출생했다. 지금으로부터 2490년 전에 태어났다. 나훈아씨 보다는 2417살이 많다. 그런 소크라테스를 보고 형이라니......

당시 아테네는 귀족 중심의 보수적인 사상과 개인주의적인 진보사상이 대립해 도시가 몰락위기에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신성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를 받아 기원전 399년 71세에 사약을 받아 사망했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구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3인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세 사람 가운데 첫 번째인 그는 자연에 머물렀던 철학의 초점을 인간생활의 성격과 행위를 분석하는데 기원을 열었다. 그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 유명하지만 정작 본인은 책 한 권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 출생해 기원전 347년에 사망하기까지 ‘국가론’ 등 이성주의적 윤리학에 초점을 두고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기록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기원전 384년 출생해 기원전 322년 사망하기까지 정치학 형이상학 등을 공부하며 윗대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세계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철학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변함이 없다. 노랫말을 한번 살펴보자. 음악평론가는 아니지만 우리시대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 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아 테스형 아프다/ 세상이 눈물 많은 나에게/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아 테스형/

가사가 애절하면서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쩌다 한번 크게 웃지만 돌아서면 걱정이 앞선다. 내일이 되면 막아야 될 카드 값과 월세 전기세 직원급여 보험료 등 얼마나 많은 걱정들이 있는가?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은 물론 대기업 중소기업과 농민 임업인 등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까지 내일이 두려운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며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라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철학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 왔는데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살기가 너무 힘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정말 모르겠다는 것을 노랫말로 표현했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정치 경제적 대립 구도가 지금의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민주국가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공정과 정의는 도마 위에 올라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에서 공정과 정의는 거론 자체가 불편한 진실이다. 왜냐하면 당연한 과정이고 절차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면, 그 세금은 꼭 필요한 부분에 사용해야 한다. 권력을 잡기 위한 선심성 돈 잔치도 안 되고, 권력 주변사람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내편 일감 몰아주기’도 안 된다. 정치권이 정신을 똑 바로 차려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고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이 남아 본인의 가치와 영혼마저 빼앗긴 채 치졸하게 연명하고 있는가?

소크라테스가 사망한 지 2419년이 흘러 그는 한국의 한 대중 가수에 의해 ‘테스 형’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제자의 이름을 빌어 ‘라톤 형’ ‘텔레스 형’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정치권은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철학에 깊은 뿌리가 있음을 알고 정신 차리기 바란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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