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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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만산홍엽(滿山紅葉)의 계절이 왔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0.10.2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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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하늘 구름 높이 미소짓고, 미풍 한 자락 스치는 새벽 미명은 시원(始原)의 숨결로 다가와 호흡 간에 생명 있음을 일깨운다. 일생이 소중하기에 하루 한 날 지나는 소리 애달프다. 가을이다.

초록 숲 지는 소리, 먹장 가슴 여닫는 소리, 작은 빛 모으는 별들의 옹기함지 소리, 만산홍엽 그리는 화가들의 오색 비비는 소리, 시골길 걸으며 바라본 산야의 느린 거동 눕는 소리,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들이 들린다.

새벽 미명에 하늘을 우러르면 누군가 다가올 것 같은 공허에 귀를 곧추세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람뿐이다. 이내 사라지는 몽환 같은 어제의 기억들은 이제 덧없는 회환인걸. 애수가 되어 사라지는 찬바람 한 자락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살아오면서 사랑을 하거나 이별을 한 문신 자국인 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온몸으로 부둥킨 시간을 지나왔어. 죽을 것 같은 별리의 아픔 또한 지나칠 수 없었지. 사랑도 이별 아닌 애증의 혼란함으로 서성이던 그해, 가을이면 더 많이 아플 거라고 소리쳐도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주위를 맴돌고 있지. 이런 편지를 써 보는 밤을 맞는 건 분명 가을이잖아.

미치도록 서러운 이별과 청초한 샘물 같은 사랑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망부석과 새로운 둥지를 찾은 환희의 동행을 모두 끌어안은 채 부표처럼 떠다니는 계절이다. 사랑하기 위해, 다시 사랑하기 위해, 진정한 사랑을 위해 몸부림치는 가을이다. 가을을 상징하는 절기로는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있다.

 한로는 지난 8일, 상강은 오늘 23일이다.한로는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이다 이 때는 여름철에 피었던 꽃들이 점점 지고 가을 단풍이 짙어진다. 우리 속담에는 “한로가 지나면 제비도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한로를 기점으로 추워지기 시작한다는 의미다.상강은 쾌청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밤에는 기온이 낮아져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날이다. 지표면에 있던 수증기가 엉겨 서리로 변한다. 곧 겨울이 닥친다는 말이다.

농사적으로는 추위가 닥치므로 추수를 빨리 마무리하여야 하는 시기다. 그러나 단풍이 절정에 다다르고 국화도 활짝 피어 늦가을의 풍광이 마음껏 펼쳐지는 아름다운 계절이기도 하다.

불볕더위가 엊그제 같더니 제법 선선한 가을이다. 완연한 봄을 느끼거나 꽃이 활짝 피는 계절을 즐길 여유도 없이 신록의 계절인가 했더니 어느덧 낙엽이 우수수 지는,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는 사색의 계절이 되었다.연초 발생한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인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관계 속에 부딪히고 마주하여 이루고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지구촌은 함께 위기를 돌파해야 하는 공동체라는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다.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회성이다. 너나없이 세상의 우리들은 ‘관계 맺음’의 천재였다. 인간은 사소한 일로 다툰 친구와 화해를 하며 별것 아닌 문제로 틀어진 동료를 달래주고 나 아닌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러한 감정들을 데이터화하고 수치화시킨 지능 프로그램으로 컴퓨터나 로봇에게 부여하기엔 아직 거의 불가능하다.인공지능의 등장으로 현재 직업 가운데 47%가 지상에서 사라진다는 UN미래 보고서의 발표가 있었다. 지적 노동의 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사람은 인공지능의 보조 역할이나 하게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구글에선 벌써 인간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머지않아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로봇이 자아를 갖고 우리에게 덤벼드는 상황도 가능해지는 건 아닐까?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이 10년 이내에 인류 사회를 급격하게 바꿀 거라고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일상을 해결하는 효율적인 기술을 다 차지할지라도, 자족(自足)의 지혜로 채워내는 인간의 행복까지 빼앗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동안 살아온 날은 너무도 무지했다.

하루하루 쓸데없는 욕구불만이 어김없이 번민과 고뇌의 산물이었건만, 이를 깨닫지 못하고 하루하루 무지몽매하게만 살아왔다.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떳떳하게 사는 길이라는 작은 깨우침을 비로소 얻게 된다. 삿된 욕심을 적게 지니면 마음만은 평안해질 수 있다. 세상 사는 거 다 오십보백보다. 누리고 산다고 해도 중생고를 벗어날 수 없듯이, 가질수록 갈증이 더해만 가듯이, 이제는 소욕자족하며 살자는 뼈아픈 깨달음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다.

타인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 나 자신도 아플 일 없다. 이제라도 더욱 선하게 손해 본 듯이 살아보자. 문명이 진보하여 세상이 더 편리해진다고 인류가 모두 행복할까? 돌이켜보면, 차도 노트북도 핸드폰조차도 소유하지 않았던 예전이 결코 지금보다 덜 행복하였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봄에는 시인, 가을에는 철학자가 된다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올 가을철에는 계절의 변화가 주는 묘미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빼앗긴 봄과 여름을 가을의 만산홍엽(滿山紅葉)에서 보상받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 방역 수칙만은 잘 지키면서 말이다.

지난 주말 강원도 설악산은 단풍 절정기를 맞아 탐방객들로 붐볐다고 한다. 코로나 영향으로 단체관광은 줄었지만 가족단위 탐방객은 작년보다 더 늘었다는 소식이다. 치악산과 함백산 강원지역 산들은 지금이 절정기다. 울긋불긋 제대로 물들어진 단풍을 구경하기에는 상강이 들어선 이번 주부터가 단풍구경하기가 딱 좋은 계절이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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