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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케시마날 행사를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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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다케시마날 행사를 규탄한다
  • 조금제 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 본부장
  • 승인 2016.02.14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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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땅!! 대마도는 조선땅!!
일본 시마네현이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그들의 땅(다케시마)으로 편입고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5년 부터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하고 있다.참으로 우습고 개탄스럽다.남의 땅을 강제로 편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기념식까지 한다고 하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일이다.독도가 우리땅라는 근거는 수도 없이 많다.독도는 서기 512년(신라 지증왕 13년)에 우산국(于山國)이 신라에 병합될 때부터 한국의 고유영토가 되었다.서기 1737년, 프랑스의 유명한 지리학자 당빌(D'Anville)이 그린 『조선왕국전도』에도 독도(우산도)가 조선왕국 영토로 그려져 있다.

일본 고문헌과 일본 고지도에서도 독도를 한국 영토로 기록하고 있으며1667년의 일본 관찬 고문헌 『은주시청합기』에도 울릉도와 독도옆에 '조선의 것'이라고 글자를 써 넣었다.17세기 말 일본정부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하였으며 1696년 일본정부는 일본 어부들의 울릉도 및 독도에서 고기잡이를 엄금했다.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에는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확인하였으며  일본 외무성의『 일본외교문서』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부속으로 되어있다'라는 실증자료가 수록되어 있다.일본 내무성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재확인하였고 일본 내무성은 시마네현에게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영토이고 일본과는 관계없는 땅임이라고 결정하였다.

일본 최고국가기관(태정관)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결정하였고, 또한 일본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것을 심득(心得, 마음에 익힐 것)할 것'이라는 훈령을 내무성에 내려보냈다.19세기말 대한제국은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정확히 표시하였으며, 갑오개혁 후 작성된 근대적 한국 지도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정확한 위치에 표시하고 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하였다.대한제국은 1900년 10월25일 독도가 대한제국 영토임을 세계에 공표하였고, 서양 사람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바위섬' 이라고 호칭하였다.일본은 1905년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강제로 편입, '다케시마'로 명명하였다.연합국은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을 발표하여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1945년, 한반도 주변의 제주도·울릉도·독도등을 일본 주권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 시켰다.연합국의 『구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규정 1950년 연합국은 다시 한번, 독도는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영토라고 밝혔다.

연합국은 1951년 발효된 샌프란시스코 협약에서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를 포기한다.’ 라는 조항이 들어가게 됩니다. 확고한 우리 영토로 결정된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직후에도 일본이 독도에 대한 야욕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은 전란을 틈타 불법적으로 독도에 상륙한것입니다.여기서 잠시 "독도대첩"을 잠시 언급해보자. "독도대첩"은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에 주둔하는 동안 일본순시선과 치룬 5차례의 전투 중 가장 격렬한 사투를 벌여 완벽한 승리를 거둔 1954년 11월21일의 전투를 말한다.그날 아침 6시경 일본 무장 순시선 오키호와 헤꾸라호가 각각 동도와 서도로 접근하여 1,300m지점에 닻을 내리고 상륙을 시도하려 하였다.수비대장 홍순칠 외 대원들은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고 연막탄을 신호로 철수를 요구하였지만 이를 무시하며 독도 접근을 시도하자 총공격을 개시하여 1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다.박격포탄이 헤꾸라호에 명중되자 오키호는 연기를 내품는 헤꾸라호를 이끌고 일본영해로 도망쳤다.소총과 기관총, 가늠자 없는 박격포 등 보잘 것 없는 부족한 무기를 가지고 목숨 걸고 지켜낸 이날의 승리는 일본이 두 번 다시 독도를 무력으로 불법 침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 까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인 독도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독도의용수비대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일본의 외교정책에는 세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첫째, 무조건 자기꺼라고 우긴다.둘째,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역사를 왜곡한다.세째,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한다.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영토이다.일본은 독도침탈야욕을 노골화하고 있고 군국주의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최근 일본 여권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외국인이 해양조사를 하거나 인공섬을 만들 경우 사전 허가를 받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면 현장조사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이는 중국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에 대한 영유권을 강화하기 위해 해양진출에 속도를 내는데 대한 견제 차원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독도를 다케시마로 억지 주장을 철회하고, 2월 22일 다케시마날 행사를 즉각 중단하고 사죄하라!!독도지킴이 대한민국 대마도본부는 독도를 수호하고 1419년 6월19일 이종무 장군의 대마도정벌의 그날을 기억하며 대마도 환수를 위해 나아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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