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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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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칼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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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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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분당제생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90년대에 본 영화 제목인데 제법 근사한 문구로 기억된다. 의사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영혼은 잘 모르겠고 불안은 몸과 마음을 잠식한다는 말이 근사하진 않지만, 더 와닿는다.

불안은 미래에 뭔가 부정적인 사건이 생길까 걱정을 하는 감정 상태인데 이 감정상태가 몸을 아프게도 한다. 불안하면 왜 몸이 아플까? 우리 뇌의 불안 중추가 활성화되면 온몸에 퍼져있는 자율신경계가 균형을 잃고 여러가지 신체적 증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답답하다고 소화불량, 설사나 변비 등의 증상, 손발이 차고 혈액순환이 안되는 느낌, 근육이긴장되고 뒷목이 뻣뻣함, 두통, 불면 등 다양하다. 우리 조상들은 “애간장이 탄다” “속상하다” 등의 표현으로 익히 이런 현상들을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불안한 감정과 그에 따른 신체적 반응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동물들이 천적의 위험을 예민하게 간파하고 도망가는데 꼭 필요한 방어 기제의 일부로 개체 보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적절한 불안과 긴장이 위험을 회피하게 하고 심지어 업무의 효율을 높이기도 하지만 이 불안이 과도하거나, 위험을 과대평가 하거나 왜곡하여 해석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고 심하면 병이 되기도 한다.

최근 매스컴을 통해서 많이 알려진 공황장애도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다만 공황장애는 거의 공포 수준의 불안 발작이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게 발생하고 동반하는 신체적 증상도 잘 통제 안 될 정도로 강하게 발생한다. 갑자기 호흡이 점점 가빠지면서, 숨이 잘 안쉬어지고 그러다 숨이 멎을것같이 느껴진다. 숨을 쉬려고 해도 공기가 잘 들어오는것 같지 않아서 더욱 숨을 빨리 몰아쉬게 된다. 그럴때 손발이 저리고, 식은땀을 흘리거나, 온몸이 떨리는 것 같고 어지러워서 곧 쓰러질것 같고, 심장도 빨리 뛰어 심장이 곧 멈추어 죽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래서 처음 공황발작을 경험하게 되면, 심장병이 아닐까 걱정을 하고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내과를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결과는 대부분 정상이다.  

공황 발작이 한번만 있고 다시 발생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공황 발작이 여러 차례 반복되거나 다시 생길까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문제가 된다. 이때 적절한 설명을 듣거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증상이 반복되는데도 검사상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말에 의문을 가진다. 혹 검사가 잘못되었거나 보통 검사로는 찾아낼 수 없는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검사를 받아본다. 심한 경우 ‘건강염려증’이 생기기도 하고, 공황 발작이 생긴 특정 장소나 엘리베이터, 극장, 지하철 등 협소한 공간을 못 가거나 피하기도 하고 사람 만나러 나가는 것도 불편해져서 외출을 꺼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 보니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기고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공황 장애는 발생 초기에 적절한 치료와 중재가 필요하다. 초기에 공황 발작의 재발을 막는 약물치료나 증상에 대한 적절한 설명만으로도 좀 더 심각한 단계의 공황 장애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불안이 증상을 유발하는역치도 다르고 불안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도 다르다. 그렇지만 치료의 목표는 증상을 조절하고 그에 따른 불안을 환자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공황 장애의 비약물적 치료 중 가장 효과가 좋다는 인지 행동 치료는 환자와 치료자가 상호 협력을 통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재앙적 인지 왜곡을 함께 찾아 교정해서 불안을 통제하는 방법을 학습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공황장애보다는 덜 유명하고 덜 드라마틱 하지만, 이외에도 불안증은 원인과 증상에 따라 여러 병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별일도 아닌데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긴장을 풀수 없어 가슴에 압박감이나, 뒷목이 당기고, 잠들기 힘들고, 소화가 잘 안되는 증상을 보이는 범불안장애, 낯선사람과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는 등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어서 그런 상황을 가능한한 피하려 하는 사회불안증, 자신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나 이미지가 떠올라 괴로운 강박신경증, 심각한 정신적 혹은 신체적 트라우마를 겪은 후에 그때 사건이 자꾸 생각이 나고 악몽을 꾸고, 잠을 잘 못 자고, 짜증을 내고, 쉽게 놀라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이 있다. 정신의학 관련 업무를 하는 전문가가 아니라면 굳이 이런 불안장애 종류들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 증상이 불안이라는 감정과 연관된 것이라는 정도는 이해하셔야 어떤 도움을 구할지 알수 있지 않을까?

불안증의 치료도 증상의 정도, 불안을 유발한 환경적 요인 유무, 타고난 기질, 등에 따라 개인에 맞추어진 치료 전략에 따른다. 평탄한 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오래 달려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가혹 조건에서 달리는 자동차는 고장이 잘 난다. 우리 인생도 어떤 길을 갈지 모르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과 같지 않을까? 자동차를 오래 잘 타려면 엔진도 넉넉하고 튼튼해야겠지만, 때로 힘든 길을 갈 때는 부스터 엔진도 필요하고, 엔진 성능을 높이는 꾸준한 관리도 필요하다. 정신건강에 관한 치료와 관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약물치료라는 부스터도 필요하고 인지 행동 치료, 정신치료 같은 좀 더 장기적인 관리와 성장이 함께 필요한 이유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김정훈 분당제생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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