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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런 사람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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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런 사람 또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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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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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한명철 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매년 5월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다. 운동권 출신이었던 나에게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누구였을까 늘 고민하고 살아왔지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여기서 논하고 싶은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니다. 내가 직접 곁에서 함께 지내왔던 설훈 국회의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설 의원은 김대중 내란 선동 사건으로 구속되어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군사법정에 섰다. 이 자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 설 의원이 ‘야, 이 똥별들아!’ 하는 외침이 법정을 흔들었다고 한다. 장성급 재판관들의 부당한 판결에 일침을 가한 청년 설 의원의 외침에 법정은 아수라장이 돠었을게 뻔했을 것이다.

당연히 법정 경위들이 달려들어 이를 제지하고 팔을 뒤틀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설 의원은 계속해서  ‘이 천하에 나쁜 놈들아,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하고 소리쳤다. 기개와 정의감은 청년시절부터 남달랐다. 이 상황을 지켜 본 김 전 대통령이 훗날 수소문 끝에 설 의원을 찾아 비서로 두면서 설 의원이 정치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나는 경남대학교에 재학하던 1987년 여름 무렵 김영삼의 조직 책임자이던 홍사덕 의원으로부터 동지의 연을 맺고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일언지하 거절했다. 현대사에서 소외받아왔던 호남인들의 아픔과 광주 망월동에 잠든 민주 영령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길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해 10월, 경남대 학생들 중 유일하게 평민당 창당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 때에 마산에 평민당 지역위원장으로 내려 온 설 의원을 처음 만났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35년동안 나는 설 의원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후원하고 지지해주는 동지가 되었다.

그의 첫인상이 너무도 강렬하여 3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박정희 유산 독재에 맞서 싸웠던 전설적인 투사, 꽃다운 20대에 민주화 운동으로 세 번의 옥살이, 물고문 통닭구이 등 모진 고문 속에서도 강요된 허위 자백을 거부하고 양심을 지켜온 사람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하며 좋은 일보다는 힘들었던 시간들이 많았지만 나의 인생에서 가장 값진 보람된 시간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는 군사 법정에서 형이 확정된 후 남한산성 군 형무소에서 순천교도소로 이감 중 호송하던 헌병에게 ‘저 산이 무등산인가요?’하고 물어본 뒤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그 후 출소한 뒤 운동권 아내와 결혼하여 신혼여행지로 망월동 묘역을 택하여 투쟁의 현장에서 죽어간 민주열사를 기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무등산과 망월동 묘지를 생각하며 살아남은 자의 책무를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이다.

설 의원 일화 한가지는 또 있다. 출마만 하면 당선이 되는 고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운동권 구성원 총의가 설훈이었다. 하지만 설 의원은 투옥 전과로 정보당국의 감시를 받는 자신보다는 운신이 자유로운 후배를 추천하여 당선시켰다. 84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 공천을 받았으니 재야 세력의 입장을 고려하여 불출마했다. 88년 13대, 92년 14대에는 군사 정권의 교체와 김대중 당선을 위해 자신보다 더 인지도가 높은 이에게 공천권을 양보하여 기꺼이 그들의 당선을 도왔다.

고대 총학생회장이나 국회의원이라는 포기하기 힘든 사적인 영예보다 민주화와 정권교체라는 대의가 그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과연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득을 이처럼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93년 당시 일곱 살이던 첫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월세 살던 형편에도 조의금 전액을 딸이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고 교통사고를 낸 젊은이의 앞날을 염려해서 준비해온 합의금조차 받지 않고 탄원서를 써 준 일, 광주 민주화운동 보상금 일억 팔천만 원 전액을 담양 한빛고등학교에 기부했던 일 등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그와 35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 오랜 시간, 내가 그에게 느낀 인간적인 감동이 크고 깊었다. 그는 대의를 위해, 옳다고 여기는 소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 시대의 흔치 않은 정의파요, 진정한 민주주의자가 아닐까 싶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한명철 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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