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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은 제1회 서해수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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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은 제1회 서해수호의 날
  • 손중우 서울남부보훈지청 보상팀장
  • 승인 2016.03.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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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이 ‘서해수호의 날’로 지정된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도발 등 북한의 서해도발 관련 사건을 포괄하는 이름으로, 우리軍의 희생이 가장 많았던 천안함 피격일인 2010년 3월 26일 기준으로 하여 3월 넷째 금요일로 지정되었다.
현재 천안함 피격 등 북한도발 관련 행사는 5년간 정부행사로 실시한 후 각 군으로 이관하여 추진하고 있으나, 북한의 도발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국가 안위의 소중함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금년부터 ‘서해수호의 날’ 행사로 추진하기로 하였다.
제1회 ‘서해수호의 날’ 행사는 3월 25일(3월 넷째 금요일)에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의 서해수호 3개 사건 전사자 모두가 안장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정부 주요인사, 희생자 유족, 학생?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될 예정이다.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끝난 후에 북한은 끊임없이 대남도발을 자행해왔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공비, 간첩침투 등의 도발을 감행해왔으나 1990년대 이후로는 핵이나 미사일, NLL(서해북방한계선) 관련 도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북방한계선(NLL)은 지난 53년 8월 30일 유엔군 사령관이 우방의 함정 및 항공기 초계활동의 북방한계를 규정하여 남북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선언한 것이다. 당시 유엔군은 북한의 전 해역과 도서를 통제하던 상황에서 NLL 이북의 도서에서 철수하여 북한에게 통제권을 양도하였으며, 이는 북한해군이 괴멸된 상황에서 NLL 이북에서 북한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해주었다.
따라서 당초 북한 측은 서해 북방한계선을 해상에서의 경계선으로 인정하고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북방한계선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분쟁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공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을 납치하고 함정과 전투기를 서해5도 주변 수역에 접근시키는 등 도발을 자행해왔다.
그리고 1999년 6월 NLL을 침범하여 우리 측 함정에 선제 사격을 가하여 제1연평해전이 발생하였으며, 2002년 6월의 제2연평해전, 2009년 11월의 대청해전, 그리고 2010년 3월의 천암한 피격과 10월의 연평도 포격까지 서해상에서 끊임없이 무력도발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경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1km 지점에서 천암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한 폭발로 선체가 두 동강나며 침몰했다.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사망하였다. 2010년 10월 23일 오후 2시 34분경 연평초등학교 학생들은 하교하던 길이었으며, 연평어린이집 원생들은 낮잠을 자는 시간. 대한민국 연평도를 북한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하여 민간인 2명을 포함하여 총 4명이 사망하였다.
북방한계선은 그 자체가 북한의 무력 남침에 따른 결과이다. 그리고 북한이 사실상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해왔고 대한민국은 영해 수호의 의지와 군사적 힘의 뒷받침으로 이를 지켜왔다.
북방한계선은 양보나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3월 25일 제1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서해를 수호하다 숭고히 산화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이 지키코자 했던 자유 대한민국을 기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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