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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졸속 '만 5세 조기 취학' 폐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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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졸속 '만 5세 조기 취학' 폐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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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8.0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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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밑도 끝도 없이 그야말로 느닷없이 정부가 2025년부터 취학연령을 1년 앞당겨 만 5세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제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7월 29일 초등학교 취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안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초·중·고 12년 학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단 한 번도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적도, 국정과제로 논의된 바도 없는 사안을 뜬금없이 꺼내 든 것에 대해 국민은 당혹스럽기 그지없고 참으로 어이없다는 반응이 거세지며 후폭풍이 만만찮다.

박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추진 배경으로 “출발선상 교육 격차를 조기에 국가가 책임지고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교사와 교실 확충이 어렵고 입시·취업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만 5세를 매년 일정 비율(25%)로 나눠 단계적으로 취학시킬 계획이라고 했지만, 교육 전문분야 경력이 많지 않은데다 원 구성 지연에 따른 국회 공백 속에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임명된 신임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발표했기에 더욱 졸속이란 생각이 앞선다.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중차대한 문제를 여론 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탓에 충분한 준비 끝에 내놨다고 믿기 힘든 이유다. 게다가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을 담당한 시·도 교육감과 사전 협의마저도 없었다고 한다. 학제 개편은 언제, 무엇을 가르치냐 하는 교육과정 개편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는 아예 언급조차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영·유아 교육의 국가 책임을 확대하고 출발선상의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 취학연령을 낮추는 이점이 있어 고무적인 부분도 없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감안하고 영유아의 신체 발달과 인지능력 발달이 빨라진 점, 선거권 연령대가 하향된 점을 고려할 때 중·고교와 대학 입학·졸업까지 연쇄적으로 1년씩 빨라지면서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출 등 입직(入直) 시점을 1년씩 앞당기겠다는 목표도 있어 보인다. 특히, 군(軍) 복무로 인해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남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취학 전 사교육 부담을 공교육으로 조기에 흡수해 정부의 보육 재정 지출과 가정의 양육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가정 형편, 지역 여건에 따라 유아 교육의 질적 격차가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평한 교육 기회 구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요자 중심의 교육적 관점이 아닌 공급자 중심의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의문이 짙다.

현재도 만 5세 입학이 허용되고 있지만, 호응은 그다지 크지 않다. 1998년 3월 1일부터 「초·중등교육법」이 시행되면서 제13조 제2항에서 “초등학교의 장은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초등학교의 학생수용능력에 여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만 5세 아동의 취학을 허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신설함으로써 만 5세 유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허용했다. 그러나 2007학년도 조기 취학 아동 수는 2,000명 대인 반면, 만 6세 취학을 미룬 취학 유예 아동은 4만여 명으로 18배에 달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빠른 1~2월생 조기 취학제도가 사라진 2009학년도에 일시적으로 조기 취학 아동 수가 9,707명으로 치솟았으나, 2011학년도부터 급감했으며, 2019학년도 651명, 2020학년도 521명으로 뚝 떨어졌고, 2021학년도 초등학교 조기 취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초등학교 취학 아동 42만8,405명의 0.1%에 불과했다. 취학 유예 아동 수는 2010학년도 이후 줄어 2019학년도 660명, 2020학년도 812명, 2021학년도 757명으로 오히려 더 많다. 

교육 정책은 “신속히 강구하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결정될 가벼운 사안이 결단코 아니다. 미래의 희망이자 내일의 주역인 아이들을 잠재적 노동력으로 보는 산업적 관점으로만 접근해서도,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도 절대로 안 된다. 미래의 꿈나무인 아이들의 인생과 나라의 미래를 좌우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의 무게에 상응한 논리를 개발하고 합당한 사회적 합의를 최우선으로 끌어내는 게 첩경이다. 직접적 피해당사자인 유아 교육계는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행을 맡긴다는 국가교육위원회는 애당초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교육 현장과 학부모들 의견 수렴이 전혀 없었다. 아무리 필요한 정책이라도 고민도 준비도 이해도 공감도 설득도 없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라면 지지를 얻기 어렵다. 취학연령을 낮추면 유치원생이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만 5세 입학’을 추진했지만 1만 곳 가까운 유치원 운영자들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시키지 못했다. 제도 변경을 시도할 때 피해 당사자집단을 설득할 치밀한 대책들을 준비해가면서 추진하지 않으면 관철하기 어렵다. 특히 지금처럼 여소야대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공교육에 들어오기만 하면 모든 학생이 평등한 교육으로 격차가 해소될 것이란 안이한 기대가 빚은 패착이 분명하다. 오히려 조기교육 양극화만 키울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인다. 이렇듯 정부는 응집력 있는 반대 집단이 뚜렷한 이 사안에 대해 소통과 설득 등 사전 공감대 확산을 위한 준비를 충분히 했다는 노력이나 고민 등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논의 절차와 사전 설득 과정 없이 발표부터 해놓고 이제부터 태스크 포스(TF)를 꾸려 추진하겠다고 한다. 혼란만 초래해 정부 신뢰를 또 한 번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반발이 확산되자 급기야 교육부는 앞으로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와 함께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치고 대국민 토론회와 공청회, 전문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이런 절차들이 기존 방침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가 되어선 절대로 안 된다.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을 도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모두가 반기고 환영하도록 교육적 관점 수요자 중심에서 신중히 결정할 일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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