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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막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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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막장 드라마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3.3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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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되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프란스 토크빌의 지적이다.이 정도일줄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야는 정치 드라마 1부 격인 4·13 총선 공천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김무성 대표의 ‘무공천 귀향 사건’으로 촉발된 새누리당 내전(內戰)이 하루 만에 봉합됐다. 김 대표가 공천장에 도장을 찍지 못하겠다고 버티던 6곳 가운데 3곳을 양보하고 나머지 3곳은 자기 뜻대로 관철한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입장 변화는 어제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친박 세력의 설득과 압력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써 청와대와 집권당 내부를 뒤집어놨던 ‘김무성의 반란’은 일단 양 세력의 타협과 절충으로 균형점을 찾았다. 다만 단호하고 비타협적인 결의를 표명한 뒤 하루이틀 만에 물러서거나 굴복한다고 해서 김 대표에게 붙은 ‘30시간의 법칙’이란 별명은 이번에도 적용됐다.
김 대표가 양보함으로써 후보등록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공천장을 낼 수 있었던 정종섭(대구 동갑)·추경호(대구 달성) 후보는 이른바 진박(진짜 박근혜계) 가운데서도 박 대통령이 가장 아끼고 총애하는 사람이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최근 박 대통령의 경북도청 행사 때 현역 의원들을 제치고 가장 앞줄 좌석에 배치됐다.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은 박 대통령이 관료 출신 중 가장 신뢰하는 인사로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달성군에 내려보낸 인물이다. 만일 이 둘의 후보 등록을 김 대표가 끝까지 막았다면 당장 박 대통령의 서릿발 같은 반격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 대표가 끝까지 우겨서 무공천한 곳에는 유승민(대구 동을)·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이 무소속으로 후보 등록을 마쳤다. 두 사람은 이한구 위원장이 주도했던 친박패권 공천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꼽히는데 김무성 대표가 이를 바로잡는 모양새가 됐다. 결국 새누리당의 내전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명분을 챙기는 물밑 거래로 마무리됐다.
막을 내린 새누리당 막장공천의 뒤끝은 쓰다. 집권당의 공천 과정이 당내 민주주의, 정치문화의 모범이 되지 못할망정 온갖 밀실·사천(私薦)·불공정 논란과 질 낮은 블랙 코미디 같은 황당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유권자의 정치혐오와 냉소는 깊어졌다. 그에 따른 민주주의 비용은 헤아릴 수 없다. 벌써부터 추악한 공천 드라마를 외면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저조한 투표율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층들의 이전투구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관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벌인 공천 드라마는 지난 25일 역대 가장 천박한 막장 드라마로 종영됐다. 공천 드라마 제작자·극작가·연출가·주연배우 모두(여야 권력층)가 애초부터 시청자(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역대 공천 드라마에서 나왔던 밀실공천, 보복공천, 공천학살, 사천(私遷) 등 단골 메뉴에다 배신의 정치, 정체성, 논개작전, 옥새투쟁 등 새로운 메뉴들까지 보태졌다. 그런데 이들 권력가들은 시청자(국민)들이 ‘새로운 메뉴에 대해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
새로운 메뉴들이 추가된 이번 공천 드라마에서 시청자들(국민)에게 전혀 관심과 흥미를 끌지 못했다. 오히려 실망감과 허탈감, 배신감마저 준 빈축과 비난의 대상이 됐을 뿐아니라 다음에 시작할 새 드라마에 대한 희망까지 빼앗아 갔다. 자신들의 뜻에 맞는 조연들을 새 드라마에 출연시키기 위한 메뉴로 이용했다. 심지어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청자들의 뜻에 맞는 조연까지도 배제시키기 위한 기회로 악용했다.
이번 공천 드라마에서 컷오프된 의원 중 상당수가 당내 역할이나 의정활동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공천 드라마를 주도했던 이들에게서 ‘짐이 곧 국가다’라며 오만과 독선에 빠져 프랑스를 불행으로 이끈 ‘루이 14세’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왜 일까. 이번 공천은 오만과 독선에 취해 유권자를 우습게 알고 우롱했다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공천은 정당들이 정치시장(선거)에 쇼핑(투표) 나온 정치소비자(유권자)에게 최고의 제품(인물)을 선보이고 경쟁하는 자리다. 따라서 지역 주민과 유권자·국민을 우선하지 않은 이번 공천은 여든 야든 모두 무책임했다.내각제를 주장해 온 김종필 전 총리는 ‘국민은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4월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호랑이의 야성을 살려 정치인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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