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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작가, 부산시립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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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작가, 부산시립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 김나현기자
  • 승인 2023.01.2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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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초기작 등 170여 점 전시…"대지진·팬데믹 겪으며 작품 세계 변화"
무라카미 다카시 작가가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좀비'전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 작가가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무라카미좀비'전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동일본 대지진 후에는 스토리가 있는 미술로 뭔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팬데믹 이후 제 작품은 또 다른 페이지로 이동한 것 같습니다."

일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 61)의 회고전 '무라카미좀비'전이 26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다.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린 전시 이후 10년 만의 한국 개인전으로, 미공개 초기작을 포함해 회화와 대형 조각, 설치, 영상 등 170여 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무라카미는 이른바 '오타쿠'(한 분야나 인물에 빠진 사람을 의미하는 일본어) 문화를 예술에 접목하는 작업을 통해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과거와 현재, 독창적인 것과 모방적인 것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슈퍼플랫'(Superflat) 개념을 제시했다.

 

무라카미 다카시, '727 DRAGON', 2018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 '727 DRAGON', 2018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을 키워드로 한 전시는 무라카미의 시그니처 캐릭터인 미스터 도브(DOB)의 탄생에서 시작해 이를 기괴하게 변형한 '탄탄보' 캐릭터의 등장, 인생사의 덧없음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의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게 구성됐다.

'귀여움' 섹션에서는 '무라카미 월드'의 대표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도라에몽과 슈퍼소닉 캐릭터를 조합한 미스터 도브,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에서 영감을 받아 도브를 변형시킨 '탄탄보', 12개의 꽃잎으로 이뤄진 '무라카미 플라워' 캐릭터 관련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알록달록한 무라카미 플라워로 채워진 공간을 지나 '기괴함' 섹션에 들어서면 뒤틀린 신체 그림을 만나게 된다. 도브 캐릭터를 이용해 프랜시스 베이컨의 삼면화를 오마주한 작품이다. 1993년 발표 당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히로폰'과 또 다른 대표 캐릭터 '미스 코코', 일본 민담이나 설화 등에 등장하는 요괴들을 섞어 창조한 요괴 캐릭터 53종도 기괴함 섹션에서 소개된다.

귀엽거나 기괴함 위주였던 무라카미의 작품 세계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큰 변화를 겪었다.

 

무라카미 다카시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이사벨 로손과 조지 다이어의 두상에 대한 연구(밝은 배경)' 전시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 '프란시스 베이컨에 대한 오마주(이사벨 로손과 조지 다이어의 두상에 대한 연구(밝은 배경)' 전시모습.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무라카미는 대지진 당시 경험을 들려줬다.

"대지진 때 큰 쓰나미로 가족을 잃은 아이에게 '엄마가 별이 됐다'고 설명하는 방송을 보는 순간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생각했죠. 종교는 너무 괴로운 사람에게 전혀 다른 스토리를 제공해서 패닉 상태의 정신을 진정시키는 게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래서 대지진 후에는 스토리가 있는 예술로 뭔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덧없음' 섹션은 그런 변화된 작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불교의 오백 나한과 금강역사, 아미타 내영도 등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을 통해 죽음과 삶, 시작과 끝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와 반려견을 실제 크기의 좀비 형상으로 재현한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도 볼 수 있다. 원전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보여주는 1988년 작 '원전도'는 지금의 작업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작품이다.

종교가 주는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팬데믹을 거치며 또다시 바뀌게 됐다.

"팬데믹이 확산하면서 뭔가 도망갈 곳이 없고 종교도 별다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스토리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사람에겐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을 보니 줌으로, 메타버스로 새로운 리얼리티(현실)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스토리를 넘어 가상 현실과 실제 현실이란 두 가지 현실을 만들고 그 속에서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전시는 부산시립미술관이 진행하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 시리즈의 네 번째 전시다. 이우환 작품 상설 전시관인 '이우환 공간'에서는 무라카미의 '원상'(円相. 한 획으로 그린 동그라미) 시리즈가 이우환의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전경, 부산시립미술관, 202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그의 작품을 두고 일각에선 비판의 시선도 있다.

무라카미는 또 다른 일본의 팝아트 작가 나라 요시토모를 언급하며 "나라와 나는 미술의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했다고 생각하지만, 일각에선 좋지 않은 풍토를 퍼뜨렸다고 말하기도 한다"면서 "관객들이 제 전시를 보고 즐길 수 있는 것인지, 앞으로도 이런 미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줄 것인지, 저는 그런 판단을 관객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에 여러 장르가 있듯이 현대미술도 예술의 한 장르죠. 저는 현대미술을 보러 오는 관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어요. '이 관점은 새롭네, 이 각도에서 보면 새롭네' 하고 흥미롭게 봐주면 좋겠습니다."

무라카미는 이날 자신이 창조한 분홍 젤리피시(해파리) 캐릭터의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 '메메메의 해파리'는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그는 "처음에는 다른 예술가와 차별화를 위해 쓰고 다녔는데 점점 확산해서 얼마 전 루이비통과 협업한 구사마 야요이도 호박 모자를 쓰고 있더라"라며 "나도 이제 영향력이 꽤 있는 것 같다"고 웃었다.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 2013, 개인 소장,ⓒ201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Heller Group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붉은 요괴, 푸른 요괴와 48 나한', 2013, 개인 소장,ⓒ2013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Heller Group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전시는 무라카미가 창조한 요괴 캐릭터를 실사화한 작품이나 무라카미가 대중적 인지도를 얻기 전인 1990년대 초기작들, 빅뱅 멤버 지드래곤과 탑의 소장품 등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다.

무라카미는 "아이들도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며 "아이들 시선으로도 즐길 수 있고 예술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우여곡절 끝에 성사됐다. 전시는 당초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으나 작품이 설치되던 중 태풍으로 노후한 미술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결국 미뤄졌다. 이 때문에 전시 기간도 짧아졌다. 미술관은 관람료 1만 원을 책정했다가 짧은 전시 기간 등을 고려해 무료 전시로 전환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리노베이션(개보수)을 앞둔 미술관에 큰 숙제를 남긴 전시"라면서 "미술 시장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K-아트 붐을 지속하려면 미술관과 미술계 시스템이 많이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3월 12일까지.

[전국매일신문] 김나현기자
Nahyeon@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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