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기고] 항아리 여인의 신발
상태바
[기고] 항아리 여인의 신발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2.06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훈철 안성교육원 교수

어느 여인이 항아리를 머리에 지고 걸어가고 있다. 누가 봐도 무겁지 않은 항아리에 물도 반도 안 찼는데도 여인은 여간 힘들게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지 육신 멀쩡하고 심지어 너무나 건강하게 보이는데도 여인은 미간을 연신 찌푸리며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씩 띄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여인이 유별나게 일하는 척을 한다거나 일부러 동정심을 사 타인의 도움을 쉽게 얻으려 연기를 한다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여인의 속사정을 들여다 보면 어떨까?

그 여인은 작은 항아리에 있는 물을 이고 지며 수십 번 같은 길을 왕복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발은 너덜하고 밑창은 찢어져 한 발 내딛기도 버겁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본인이 맞다고 판단하며, 오히려 중요하게 봐야 할 신발의 밑창, 즉 타인의 처한 상황을 쉽게 간과하기 쉽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근본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 한다. 심리학자 리로스(Lee Ross)는 상대방이 처해있는 상황은 과소평가하고, 그 상황에 의해 나타나는 성향은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했다.

사람의 행동엔 특정한 상황과 여건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원인 요소들을 무시하고 그 사람의 기질적인 특성으로만 탓을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나의 상황엔 맞지만 상대의 상황엔 틀릴 수 있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상대의 상황을 확인하지 않으면 내 상황에 맞춰 상대를 평가하는 오류에 우리는 너무 쉽게 빠질 수 있다.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람을 자신의 잣대에 맞춰 평가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쉽게 판단하고 자신이 옳으며, 자신의 잣대에 조금의 어긋남이 있으면 이상하다고 규정짓거나 심지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판단은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대게는 부정적으로 흘러간다.

상대를 깍아내림으로 자신이 그 상대보다 더 높은 지위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다는 교만한 생각이 무의식에 내재 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특정인에 대해 뒷담화를 하며 서로 공감하고 거기에서부터 친밀한 유대감이 형성됨을 느끼고 있다. 흔히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고 또한 어느 정도는 들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공감이 각자에게 유익하고 올바르며 정신적으로 좋은 것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또 다른 문제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put oneself in someone’s shoes)는 서양 격언이 있다.

나에게 편하고 나에게 맞춰진 신발 대신 상대의 찢어지고 헐거워진 신발을 신는 것은 본능적으로 거부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신을 신고 그 사람의 상황을 오롯이 맞이한다 한들 그 사람의 감정과 상황을 동일하게 느끼기엔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기존에 형성된 가치관과 기준을 바꾸기엔 힘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에는 상대의 신발을 신어보자.

상대의 마음과 처한 상황을 공감하기 위해 나에게 길들여진 편안한 신발이 아닌 상대의 불편하고 안 맞는 신발을 신어 보자.

추운 겨울 작은 등불 하나로 따스울 수 있듯, 퍽퍽하고 흉흉한 시대에 나로 인해 조금은 밝고 따뜻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면, 올 한 해는 역설적으로 다른 사람의 해가 아니라 나의 해가 되지 않을까.

[전국매일신문 기고] 오훈철 안성교육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