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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기후변화의 실존언어학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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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기후변화의 실존언어학 (下)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6.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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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싸울 일을 말로 풀려니, 온난화가 ‘음모론’된 사연...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기후의 여러 ‘변화’ 상황이 어떤 지역에는 이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반구 위쪽 추운 지역인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내놓고 이런 주장을 폈다.

그는 “러시아의 기후가 따뜻해지면 곡물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고 모피코트에도 돈을 덜 쓰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태 비슷한 (기후) 환경을 가진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 끊이지 않는다. 

변화의 속도가 가속화(加速化)되는 동시대의 기후에 맞춰 세계 각지의 농수산업(農水産業)이 재빨리 바뀌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脈絡)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남해안의 키위나 바나나, 중부지역의 사과처럼 재배 작목(作目)이 바뀐다. 제주바당 자리돔이 이제 한국해 울릉도에서 잡힌다. 그 대체(代替)의 속도는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다.  

물론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선택의 시효(時效)는, 그 ‘불가피(不可避)’도 의외로 짧을 수 있다. 인류 먹거리에 대한 더 슬기로운 생각이 필요해질 것이다.      

푸틴이 예시한 모피코트 얘기처럼, 추위가 일상인 국가(지역)의 사람들에게는 ‘온난화(溫暖化)된 지구’가 언뜻 괜찮게 느껴질 수도 있다. 피부는 그런 위안(慰安)을 가질 수도 있지만 문제는 어떤 부수적인 이득도 지구촌 전체로 보면 극히 보잘 것 없는 것이니 문제다.

그러나 기후 관련 정보를 다루거나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척하는) 국가나 세력들은 상대적으로 아직은 영향을 덜 받는 시원한 지역에 똬리를 틀고 있다. 또 그들은 여태 ‘기후변화’의 원인을 만들어온 소위 산업화 국가들이다. 

정보와 유통을 오로지하고 있는 까닭이다. 피해가 코앞에 닥친 지역의 상황에 비해 국제정치나 언론이 (속으로) 느긋할 수 있는 것이다. ‘너부터’의 세련된 몸짓과 얼마간의 자선(慈善)성 기부로 너끈히 면피가 된다. 그 단맛에 미국도 유럽도 아직 미몽(迷夢)에서 못 벗어났다. 

지구 전체의 입장에서는, 싸워야 할 일을 말로 하려다, 시기 놓치고(失期 실기) 기회 놓치고(失機 실기) 마침내 기운마저 놓치는(失氣 실기) 파국을 자초(自招)하는 것이다. 재난 재앙 붕괴 등 ‘기후의 분노’를 기후변화라고 (이해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음모 아닌가.

이런 음모는 본격 음모론으로 바뀌어 독버섯처럼 번진다. ‘당장 지구가 무너지나?’ ‘부정적 측면만 강조하는 가짜뉴스가 문제다.’라는 식의 자위(自慰)를 강조하는 논리를 앞세운다. 

비밀조직이 지 이득을 노려 퍼뜨리는 시나리오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기후의 문제들을 앞세워 인류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려는 전체주의, ‘생태독재’로 몰기도 한다. 

‘지구 최후의 날’같은 영화들, 문제의 실체를 ‘영웅적 오락물’로 소비해 버렸다. 그래서 문명(文明)한 상당수 인류는 심각성을 흘려버리기 일쑤다. 마지막 장면에 성조기(星條旗)를 우러러보도록 줄거리를 진행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천박한 ‘위대한 미국’주의도 그 대표격이다.

그러나, 보라. 미국도 이미 무너지고 있지 않은가.

동일본대지진(2011년)과 초대형 해일(海溢)의 거대한 붕괴를 인류는 동시에 목격하고 말았다. 핵발전소 폭발의 상처와 그 고통이 여태 아물 줄 모른다. 

낫 놓고 기역(ㄱ)자 모르는 꼴 섬나라, 인류붕괴에 한몫 보탠다. 우주도 해칠 독(毒)을 바다에 버리겠단다. ‘과학적으로’ 문제없다니 너나 드시게, 과학이라는 어리석은 저 문명을 어찌하랴.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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