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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제비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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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제비 울음소리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1.02.04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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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다산 정약용은 조선후기 유명한 사회 개혁가인 동시에 실학자였다. 영조 시대인 1762년 태어나 현종 때인 1836년 사망했다. 영조 정조 순종 헌종 등 조선후기 4대의 왕을 거치면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 무려 500여권을 저술하면서 사회개혁을 적극 제시하며 변화를 추구했다.

조선왕조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묵은 나라를 새롭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왕조를 인정하면서 국태민안을 강조했다. 그는 당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쳐 개혁을 주장했고 각종 저술활동을 통해 중요성을 알렸다. 부친의 영향을 받아 일찍 과거시험에 합격한 이후 천주교에 연루돼 포항과 강진을 유배했지만 그의 실학사상과 목민관 정신은 아직도 공직자들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수많은 저술활동도 했지만 개혁과 시대를 풍자하는 고시(古詩)도 많이 남겼다. 그의 고시 27수 가운데 제비와 관련된 내용은 최근 급등하는 부동산에 비유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제비가 집을 찾아다니는 애처로움을 표현한 고시는 아파트 구입을 위해 노력하는 서민들과 청년들의 애절함이 연상되고 있다. 그는 ‘제비 한 마리가 처음 날아와 지지배배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네. 말하는 뜻은 분명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하네. 느릅나무 홰나무 구멍은 많은데 어찌하여 그곳에 가지는 않는가.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라고 표현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권력과 서민들의 관계를 풍자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규모에 따라 계층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양반과 서민으로 완전하게 제도화 되던 시기였다. 지배와 피지배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횡포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마저도 무시되는 시대였다. 당시 천주학을 접했던 다산 정약용은 인간의 평등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황새와 뱀은 지배층의 몫으로 안정적인 반면 서민으로 표현되는 제비는 갈 곳 없어 남의 집 추녀 밑에 지푸라기로 집을 지어야 하는 서러움을 표현한 것이다.

정약용이 제비를 등장시킨 것은 제비의 특성 때문이다. 제비는 3월 하순 한국에 찾아와 번식한 후 10월 하순 남쪽으로 날아간다. 여름 철새로 알려진 제비는 우리에게 익숙한 새로 흥부와 놀부를 비롯해 지금까지 사회풍속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은 대략 음력 3월3일로 우리민족은 삼짇날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는 9대 속절에 속할 만큼 귀한 날이었다. 음력 3월3일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로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한 것에서 비롯돼 제비가 찾아오는 삼짇날을 길일이라고 생각했다. 제비는 따뜻한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지내다가 음력 9월9일을 전후해 동남아로 이동한다.

얼마 전 경실련이 집값에 대해 재미난 결과를 발표했다. 역대 정권별로 집값 상승률을 분석한 결과는 의외의 상황이었다. 지난 2003년부터 2020년까지 경기도내 시군 67개 아파트 단지 6만여 가구의 시세를 정권별로 비교 분석한 결과 30평 기준으로 집값 상승은 문재인 노무현 정권 때가 절대적이었다. 2003년 당시 2억 원이었던 아파트 가격은 현재 4억6000만원으로 상승했다. 단순한 수치로 2억6000만원이 올랐으며 이 중 96%인 2억5000만원이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 올랐다.

정권별로 상승규모를 보면 노무현 정권 1억1000만원 상승, 문재인 정권 1억4000만원 상승, 이명박 정권 3000만원 감소, 박근혜 정권 4000만원 증가 등으로 나타났다. 좌우성향의 단체에서 발표한 것이 아니라 경실련이라는 공공성 있는 단체에서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은 물론 형평성에도 균형을 유지했다고 판단된다. 경실련은 이와 함께 연봉 3400만원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4년을 모아야 경기도 30평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황새와 뱀의 기득권에 눌린 제비가 남의 집 처마에 집을 짓고 살다가 떠나는 것처럼 우리나라 서민들과 청년들은 평생 전셋집과 월세를 살아야 하는 설움을 가지고 있다. 경기도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부산 대구 대전 울산 창원 등 웬만한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대를 넘었으며 부동산 거래시장에는 15억 원을 넘는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청년과 서민들이 10억 원대의 아파트를 구입할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녀양육과 건강한 가족생활을 위해 최소한의 주거환경은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 절망감만 주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언제 희망으로 바뀔 수 있을까? 열심히 살면 집을 살 수 있다는 기성세대들의 삶과는 달리 이들에겐 포기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 어차피 안 되는 일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어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결혼생활도 힘들고 자녀양육도 힘든데 책임질 일 없이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인식이 슬픈 현실이 됐다, 어떻게 보면 정부정책이 청년과 서민들에게 포기를 유도하는 느낌이다.

제비울음소리가 청년들과 서민들의 울음소리가 되지 않도록 정권차원의 대책이 필요할 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땅에 집 없는 서민들의 제비울음 소리가 그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행동을 하길 바란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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