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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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4.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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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나이는 서른이 넘어가는데 결혼은 안 할 거냐고 묻는다. 결혼을 안 하기는 왜 안 하겠는가 못하는 것이지, 둘이 아닌 혼자라도 하는 것이라면 그 좋은 것을 급한 성미에 벌써 했을 것인데 말이다.

결혼을 안 한 것과 못 한 것이 별반 차이가 없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안 한 것은 아직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못한 것은 막다른길의 절박감만 있을 뿐이다. 더욱이 나 같은 농촌총각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기보다 아예 무모하다고 보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농촌총각이 결혼하기 어려운 것은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만 국한된 얘기만이 아니다. 옛 민화나 설화집에도 농촌총각이 장가가기 힘든 것이 잘 나와 있지 않았는가? 착한 농사꾼이 혼자 사는 것이 딱해서 우렁각시를 보내기도 했고, 금강산 나무꾼은 아예 포도청에 끌려갈 것을 작심하고 선녀 옷을 절도하여 선녀를 볼모로 잡고 결혼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농촌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 희망의 싹을 틔운 곳이다. 심훈의 상록수를 읽으면서 4-H활동을 했고, 브라더스 포(Brothers Four)의 그림 필드를 들으며 나의 푸르른 젊음을 땀과 섞어 땅에 뿌리면서 한눈 안 팔고 들판만 바라보며 일을 했다. 그때 바라본 이발소에 걸린 밀레의 그림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언제부터인가 시작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결실을 맺게 되고, 농촌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농(離農)이 생기더니 젊은 노동력은 하나둘 떠나가고, 남은 젊은이들의 결혼문제가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되었다. 나뿐 아니라 농촌총각이 결혼을 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처녀들에게는 농촌이 하나의 유배지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 유형지의 총각이 결혼을 위해서 여성을 데려온다는 것은 하나의 죄악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평화로움의 표본처럼 여겼던 밀레의 그림도 그 즈음에 들어서서는 평화롭게 보이지를 않았다. 들판에서 이삭을 주웠고, 기도하는 그림은 고달픈 내일의 일용할 양식을 간구하는 그림으로 보였다. 궁여지책으로 농촌지도소에서는 연변 조선족 처녀와 농촌총각 맺어주기 이벤트 행사가 있었지만, 최저 학력이 농고출신까지라 하여 나는 학력미달로 그림의 떡으로만 그쳤다. 어느 때부터인가 광속의 농약 냄새가 향기롭다고 느껴질 때, 두드리면 열린다는 말을 성경에서 본 것 만 같았다. 창세기 2장 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라는 성경말씀을 기도인지 주술인지 분간도 못하고 중얼댔다.

기도인지 주술인지 아무튼 둘 중의 하나가 통했는지 선을 보라는 소리가 들렸다. 치마만 들렀으면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그 여자의 모든 것 안 보고 치마만 보고 결정하겠다고 마주 앉았다. 상대의 여자는 보호자로 세무서 직원을 데리고 온 것만 같았다.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재산목록 조사를 해댔다. 나에게 선택권이란 아예 없고 급기야는 취조당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상대방의 요구조건에 맞춰서 혼사를 성사시킨다면 이것이야말로 불평등조약의 대명사인 강화도 조약과 하나 다를 것이 없었다.

영화 ‘헌팅파티’에 나왔던 주인공의 청순한 모습은 생각 않더라도, 사랑하는 남편 쫓아서 감옥에라도 가겠다고 발버둥치는 ‘부베의 연인’에 나오는 마라 같은 여자는 입 밖에 내지도 못하고 마음속의 생채기 하나만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결혼’이란 게 나에게만은 고르디오스(Gordias)의 매듭과도 같아서 매듭지은 끈 잡아당기듯이 오기 섞인 이빨 담금질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마음 뒤편으로는 어디선가 나를 생각하는 평강공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선을 보라라는 전갈이 왔다. 예감으로 봐서는 평강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이렇게 늦게 나타난 것은 필시 아바마마를 피해서 성문을 빠져나오는데 지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다방 한구석에서 대면을 했다.

내 나이 서른이요. 상대방 여자 나이도 서른이라 하는데 여자나이 서른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한 것은 비단을 고르기 위함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비단은커녕 무명도 아닌 삼베와 마주앉아 있다. 지금 나는 넓은 들판에서 앵두를 먹으며 행복에 젖어 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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