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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주유소 가는 게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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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주유소 가는 게 겁난다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2.05.1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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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일거리가 없어 가뜩이나 어려운데 경유(디젤)값까지 이렇게 뛰니 미치겠어요” 지난해 요소수 대란으로 가슴을 졸인 디젤 차량 운전자들이 올해는 기름값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 가격보다 더 비쌀 정도다.

1년 전만 해도 1300원대였던 경유가 2000원에 육박하게 된 건 세계 3대 산유국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은 연초 대비 50%, 경유는 75%나 올랐다. 더구나 유럽은 전체 경유 수입에서 러시아산 의존도가 절반도 넘는다. 

미국은 유가 안정을 위해 석유생산수출카르텔금지법(NOPEC)까지 추진하며 사우디와 이란, 베네수엘라 등 다른 산유국의 증산을 압박하고 나섰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중국의 봉쇄가 풀리고 미국에서 여름 휴가까지 시작되면 유가는 더 뛸 공산이 크다.

요즘 디젤차는 경제성에서도 매력이 반감됐다. 최근들어 국제 환경이 변하면서 유가는 급상승했고, 이로 인해 가솔린(휘발유)이나 디젤(경유)과의 소비자 가격도 엇비슷한 수준이 됐다. 지금까지 디젤 세단이나 디젤 SUV를 선택한 오너들에게는 연료값이 저렴하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겠지만, 이제는 이 같은 마지막 보루마저도 무너진 셈이다.

상대적으로 복잡한 구조로 설계된 디젤 세단이나 디젤 SUV는 구입 후 5년 이상 지나면, 진동과 소음 등으로 탑승객에겐 불편을 초래하는 등 성능이 크게 저하된다.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촉매제 요소수를 주기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모르긴 해도 요즘 열독률이 가장 높은 미디어는 주유소 가격표시판 아닐까 싶다. 기름값이 자고 나면 오르다 보니 거리를 운전하면서 주유소 가격표를 눈여겨보는 일이 일상화 된지 오래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어플인 ‘오피넷’ 역시 ‘기름값 아끼는 지름길’로 알뜰족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고유가 시대 생존전략의 슬픈 풍경이다.

휘발유와 경유에는 붙는 세금이 참 많다. 우선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의거한 교통세가 있다. 법령에 리터당 세액을 휘발유는 475원, 경유는 340원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여기에 주행세(교통세의 26%)와 교육세(교통세의 15%)가 더해진다. 3%의 관세와 수입 부담금까지 합한 최종 판매가에 10%의 부가세까지 더해지면 세금은 무려 여섯가지나 된다. 배 보다 배꼽이 큰 셈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국민을 위해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유류세 인하폭을 20%에서 30%로 대폭 확대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환율변동 등으로 국제 유가 상승세가 유류세 인하분을 상쇄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유값은 더 올라 휘발유 값을 넘어서는 이른바 경유값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 경유값은 보통 유류세 차등적용으로 휘발유보다 200원 가량 저렴하다. 하지만 최근 국제 경유값이 크게 올라 전국 주유소 3곳 중 1곳 꼴로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넘어 섰다. 2008년 이후 처음이다. 경유값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경유는 경제를 움직이는 연료이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폭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등 슬기로운 대처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 업계에선 ‘화석연료의 저주’ ‘탄소중립의 역설’이라고 얘기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탄소중립이 글로벌 화두가 되면서 석유 메이저의 투자가 급감하고 노후 설비 폐쇄가 빨라진 게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석유 제품 가격이 치솟으며 석유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석탄 소비도 늘고 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행보가 오히려 기후 변화를 앞당길 판이다. 

정부가 유류세를 내리면서 정가가 아닌 정률로 인하한 것도 역전 현상의 한 요인이다. 휘발유에는 유류세가 820원, 경유는 573원이 붙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30% 인하하며 휘발유는 247원, 경유는 174원이 떨어지는 효과가 생겼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휘발유 소비자가 더 큰 혜택을 본 셈이다. 이는 결국 에너지 소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리나라는 경유 차량 비중이 높은 편이다. 국내 차량 약 2600만 대 중 경유 차량이 38%가량인 1000만 대에 이른다. 여기엔 화물차 330만 대가 포함돼 있다. ‘서민의 발’로 불리는 1t 트럭과 택배 트럭 등은 생계형 운송수단이다. 이들의 평균 운송료 중 기름값 비중이 30%를 넘으니 걱정이 크다.

차량 연료는 대부분 석유(원유)를 가열해서 얻는다. 끓는점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경유는 끓는점 250~350도의 디젤 연료이고, 휘발유는 끓는점 30~200도의 가솔린 연료다. 등유는 180~250도, 중유는 350도 이상에서 추출된다. 남은 찌꺼기는 아스팔트로 쓴다.

경유는 중유보다 밀도가 낮고 가볍다(輕)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유값이 뛰면 서민의 연료비 부담은 커지고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일률적 유류세 인하보다 소상공인과 서민, 저소득층과 취약층을 위한 경유 쿠폰이나 바우처 지급, 유가환급금 등 맞춤 지원책을 검토해야 할 때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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