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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64] “새해는 낮은 데로 향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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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64] “새해는 낮은 데로 향하게 하소서”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01.04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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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용 시인(1940 ~ 2006년)
충북 영동 출신으로 197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대전의 대표 시인으로 대전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 별세 

<함께 읽기> 최근 뉴스를 보면 ‘세계적 경기 둔화로 우리나라 수출량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다’는, 이처럼 하향(下向)이란 말이 부정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이 하향(下向)을 갖고도 아주 뜻깊은 시를 만들어 냈다. 분명 향상(向上)이나 상향(上向)이 아님에도.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 그게 물의 속성이다. 이 엄연한 현실을 다 알면서 시를 썼다. 무슨 의도일까? “끝까지 아래로만 흐르는 / 한길 집념”, 낮은 데로 임하다. 참 좋은 말이건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낮은 곳이기 때문이다.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낮은 데로 임하는 사람은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자신을 높이는 일보다 자신을 낮추는 일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 쳐다보지 않는 물 / 외고집이라고 함부로 비웃지 마라” 우리는 늘 크고 빛나고 우러러보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작고 흐릿하고 내려다보이는 일에는 눈을 주지 않는다. 공룡과 개미를 보면 개미는 하잘것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룡처럼 계속해서 커감에 목표를 둔다. 하지만 공룡은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 큰 덩치를 거꾸로 돌리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개미는 재빨리 뒤집는다. 그리고 공룡은 나아가는 길마다 부딪친다. 허나 개미는 늘 기어 다니기에 부딪침이 없다. 결론적으로 공룡은 멸종했고, 개미는 살아남았다. 햇빛이 늘 낮은 곳으로 비추기에 만물이 혜택을 입고, 빗줄기가 늘 아래로 떨어지기에 만물이 숨을 쉰다. 그렇게 낮은 데로 눈을 둬라는 가르침을 얻어도 우리는 마음에 담아둘 뿐 옮기지 못한다. 오늘도 그럴 것 같다. 거기에 우리 모두의 아픔이 있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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