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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유혹의 재앙, 판도라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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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유혹의 재앙, 판도라의 상자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3.04.16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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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방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Pandora)’는 제우스가 신들을 총동원해 만들 인류 최초의 여자다.

판도라 이야기는 기원전 8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활동한 농부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Theogonia)와 ’노동의 나날(Erga kai Hemerai)에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흙에다 물을 섞어 여신과 닮게 빚은 형상에 목소리와 힘을 불어넣자 아테나는 그 피조물에 직접 만든 옷과 허리띠를 둘러주고, 면사포를 씌워 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매력을 더해 주었고, 헤르메스는 기만과 속임수, 아첨과 꾀와 같은 교활한 심성을 심어 주었다. 그 밖에 다른 신들도 각각의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제우스의 의도대로 첫 번째 여인 ‘판도라’가 탄생했다.

판도라는 ‘모든(pan) 선물(dora)을 다 받은 자’라는 뜻이다.

판도라를 창조한 이유는 인류에 대한 희망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기 위한 존재였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제우스가 티탄 신족과 전쟁 시 동족의 편에 서지 않고 제우스 편을 든 티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틀라스의 동생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였다.

제우스가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는 동생 에피메테우스(Epimetheus)와 함께 세상을 정비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다. 신을 공격할 인간과 짐승들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선물을 배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에피메테우스가 선물을 남발하는 통에 막상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피조물 중 인간을 가장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제우스가 인간에게 금지한 불을 훔쳐다 주게 됐다.

불을 손에 넣은 인간은 익힌 음식을 먹고, 도구를 만들어 사냥하며, 땅을 갈아 농사를 짓고 전쟁을 일으키는 등 새로운 문명화의 길을 가게 되자 제우스는 크게 분노해 자신의 명을 어긴 프로메테우스를 벌하기로 한 것이다.

헤파이토스가 만든 쇠사슬로 카우카소스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신조인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끔찍한 형벌에 처해졌다.

상처를 입은 간은 매일같이 재생됐고, 형벌은 무려 3000년 동안이나 지속되다가 헤라클레스가 와서 풀어준 뒤에야 끝이 났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벌주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고, 불씨를 받은 인간들에게도 조치가 필요했다.

이에 그가 고안해낸 것이 바로 ‘판도라’였다. 헤르메스를 시켜 아름답지만 교활하고 참을 수 없는 여인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고, 에피메테우스는 거부할 수 없는 판도라의 매력에 빠져들어다.

제우스가 보낸 선물은 어떤 것도 받지 말라는 당부도 잊은 채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다. 그의 선택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의 재앙’이었다.

지난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소속 의원 등에게 돈 봉투를 전달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돈 살포 관련, 녹음파일이 정가를 흔들고 있다.

검찰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전 대표의 당선을 위해 송 전 대표 후보 캠프 관계자 9명이 윤관석·이성만 소속 국회의원 등에게 9400만 원을 금품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한 것이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 휴대전화에서 2021년 5월 민주당 전당대회를 한 달 앞둔 4월 강래구 한국감사협회 회장(당시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과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 등 3만 개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당 녹음파일에는 강 회장이 이 전 부총장에게 “(윤)관석이 형이 ‘의원들에게 (돈을) 좀 줘야 하는 것 아니냐’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 “봉투 10개가 준비됐으니 윤 의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하는 등 실명이 함께 거론된 다수의 관련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녹음파일 외에 돈 전달 과정이 상세히 적힌, 이른바 ‘이정근 노트’가 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녹음파일에 이어 관련 노트까지 확보될 경우 민주당을 대혼란에 빠뜨릴 핵폭탄급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강 회장이 전당대회 무렵 윤 의원의 요청에 따라 돈 봉투를 마련한 뒤 이 전 부총장 등을 통해 현역의원 10~20명과 전국 대의원 및 권리당원까지 포함해 모두 80여 명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들 모두 수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돈 봉투 의혹에 대해 “범죄 혐의자 국회의원들로 따로 국회 교섭단체(20석)를 꾸릴 수준까지 갈 태세”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제1당의 전당대회가 ‘쩐대’로 불리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며 “대한민국 정치의 ‘흑역사’로 남을 후진적 정당 참사이며, 민주당이라는 당명까지 사라져야 할 초유의 돈 봉투 게이트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음 주쯤 당내 기구를 통해 ‘돈 봉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돈 봉투’라는 ‘유혹의 재앙’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민주당을 혼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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