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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2] '웃음 바이러스가 번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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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詩 72] '웃음 바이러스가 번졌으면'
  • 서길원 大記者
  • 승인 2023.08.2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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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장남석(1965년생)
인천 덕적도 출신으로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특이한 경력으로는 박철수 감독의 불교 영화인 '성철"에서 성철스님 역을 맡음.

<함께 읽기>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전염병은 모두 ‘바이러스’를 통해 옮아간다. 그러니까 바이러스는 참 나쁜 녀석이다. 하지만 좋은 바이러스도 있다. '웃음 바이러스'. 한 사람의 웃는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로 '번져가' 행복을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번짐, 어릴 때 붓글씨 쓰려 습자지에다 먹물 묻혀 쑥 그으면 종이에 빨려들 듯이 번져가던 그 까만 먹물들의 번짐. 봄에 활짝 핀 목련꽃이 번져 사라지면 이내 여름이 된다. 그 꽃이 사라져 그 자리가 열매로 번지면 가을이 된다. "너는 내게로 /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는.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순간. 즉 사랑은 번짐이다. 번짐은 번져가고자 하는 쪽에서의 움직임 못지않게 받아들이는 쪽에서의 자세도 중요하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는 잘 휘어지지만, 죽은 나뭇가지는 휘어지지 않고 대신 부러진다. 달리 말하면 살아 있는 영혼은 잘 번지나, 죽은 영혼은 번지지 않는다. 웃지 않는 얼굴을 보면 근육이 죽어 있다. 죽은 근육은 아무리 재미난 우스개를 들어도 웃음이 번지지 않는다. "번짐, / 번져야 사랑이지 /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사랑은 번짐이다. 번짐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나아간다. 밀어내고 부드럽게 떠나고 밀려 들어오는, 그 '어쩌지 못하는 사랑'. 스밈과 어울림, 나눔도 그렇다. 스며야 번지고, 어울려야 함께 환해진다. 오늘 이 시를 읽은 분들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번지면, 그 번짐이 곁의 소중한 사람에게로 번져가면, 그래서 온 누리로 번져 꽃을 피웠으면 한다. 번짐, 참 고운 말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大記者
sgw3131@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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