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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노마지지(老馬之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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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노마지지(老馬之智)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11.23 11: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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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노마지지(老馬之智) 어떤 직책에 있던 옛 인물이 현재 인물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때 쓰는 속담이다. 사자성어로는 ‘구관명관(舊官名官)’. 현대에는 ‘옛것이 더 좋다’는 관용적인 의미로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어느 정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누적된 보편적 진리에 가깝기 때문에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최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사회분야에서 변화가 가속화되다보니 노장의 노련함 보다 젊은 패기의 우월함을 강조하면서 빠른 세대교체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고전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위험을 경고하는 글이 많다.

고사성어 ‘노마지지(老馬之智)’는 여기서 유래됐다. ‘노마지지’는 늙은 말의 지혜란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연륜이 깊고 경험이 많을수록 더 능숙하고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젊은 세대들의 일에 대한 추진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은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핵심 축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앞선 이들의 경험과 경륜이다. 

젊은이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경험으로 쌓인 역량은 갖추기 어렵다. 늙은 말이 힘이 없어 전쟁에 큰 도움은 되지 못해도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자신에 부족한 경륜과 치밀함은 윗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윗사람은 젊은이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훌륭한 리더는 모든 방면의 능력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필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재능을 갖고 있으며 일하는 데는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다. 심지어 구르는 돌조차도 쓰임새가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득이 된다. 각 사람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적재적소에 맞는 사람을 배치하는 것, 그리고 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 이것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이지 않을까 한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인간의 지혜론에 관심이 많았다.어떤 사람은 지혜롭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가? 무엇이 그 차이를 결정하는가. 이를 결정하는 변수는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나는 참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었다. 60대 초입에 들어선 필자도 지금도 무명의 바다를 헤매고 있는 심정이다.단지 조금이라도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학생에 불과할 뿐이다. 공자는 72세에 세상과 하직했다. 그 당시 평균 수명이 35세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장수한 편이다. 그는 논어에서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하였다. 말 그대로 마음을 따른다는 뜻이다. 70세가 되면 마음이 가는 데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從心所欲 不踰矩)고 했다. 그는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제자들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했지만 허탕이었다. 자기를 알아주는 주군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궁핍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면 그가 그러한 여건 속에서도 오래 살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인가. 그 동력은 마음을 잘 다스려 평정심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종심은 평상심과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마음의 상태라고 나는 해석한다. 종심론은 질풍노도의 인생사를 경험하면서 얻은 공자의 위대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말하는 종심은 나이 많이 든 사람들이 어떤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과 사상의 자유’ 같은 추상적 가치보다는 편을 가르고 선동하는 전체주의적인 ‘증오의 동력’이 더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본산인 미국도 탈진실이 판치고 그 결과 트럼프 같은 기형아가 나온 것이다. 지식인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절박한 심정으로 성찰해야 할 작금의 상황이다. 지식인에게 희망을 포기한 사회에서는 구령이, 권력이, 재력이 인간을 재단하는 박제화된 사회의 출현이 예고되어 있다.이런 사회가 파시즘이다. 그런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구성요소인 사랑, 자유, 창조가 가능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멀리 갈 그것 없이 북한을 보면 알 것이다. 아름다운 연애 시를 썼던 백석도 북한에서 시심을 펴보지도 못하고 산지기로 살다가 인생을 마감했다. 바야흐로 ‘올드보이들의 시대’다. 노마지지(老馬之智ㆍ늙은 말의 지혜)를 기대해 본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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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3-11-23 22:59:22
고대의 선지자, 사상가들의 특성은 다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天命이나 인간세상을 교화하겠다는 투철한 신념이 가장 우선되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중간에 배고프더라도, 자기의 사상과 이념을 국가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주유천하 하신 스승.사상가들이 계십니다. 聖人이나, 인류의 스승들에 대한, 평가는 후세의 필부에 그치는 우리들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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