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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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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나눔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3.12.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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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불교의 화엄경에 ‘인드라망’이라는 구슬 그물 이야기가 나온다. 인드라망은 코마다 반짝이는 보석이 매달려 있는 끝없이 거대한 그물을 뜻한다. 인드라망 보석들은 서로 빛을 주고 받는다. 하나의 보석이 다른 보석들에게 빛을 주고, 빛을 받은 이들 보석은 또다른 보석에게 빛을 선사하는 것이다. 인드라망은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보석처럼 귀한 존재이며, 각각은 서로에게 빛과 생명을 주는 구조 속에 공존한다는 진리를 상징한다. 이는 삼라만상의 관계가 경쟁이 아닌 협동에 의해서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을 던져준다. 어떤 보석도 외부의 도움 없이 홀로 빛나지 못한다는 얘기다. 세밑이 다가오면서 거리 곳곳에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일제히 내걸렸다. 빨간 색깔의 자선냄비는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이웃사랑을 실천하자고 행인들에게 권한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이웃사랑의 대명사로 만나는 것이 바로 자선냄비다.

난파 여객선 승객 1000여명이 미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닿은 건 1891년 겨울이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난민을 돕기 위해 구세군 사관 조셉 맥피라가 나섰다. 오클랜드 부둣가에 큰 솥을 걸어 놓고 ‘솥을 끓게 합시다’라고 써붙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돈을 넣기 시작했다. 영국 리버풀에 있던 자선 모금함 ‘심슨의 솥’에서 얻은 아이디어였다. 한 신문은 자선 솥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가는 걸 보고 ‘돈을 모으는 신기한 장치’ 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기독교의 한 교파다. 감리교 목사 윌리엄 부스가 기독선교회를 만든 뒤 1878년 조직을 군대식으로 바꾸었다. 세계 118개국에 교회 1만5000여곳, 교인 150여만명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한 건 1928년이다. 일제의 수탈에 흉년과 수해까지 겹쳐 거지들이 들끓던 시기였다.

스웨덴 출신 구세군 정령 조셉 바아(박준섭)가 서울 명동 종로 등 20여 곳에 내걸고 모금을 시작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급식소를 열어 끼니를 거른 사람들에게 밥과 국을 먹이고 옷도 나눠줬다. 요즘으로 치면 무료 급식소다. 그 후 매년 연말이면 빨간 냄비와 딸랑거리는 종소리로 이웃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올해도 전국 지역에 자선냄비가 걸렸다. 냄비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기부를 하거나 ARS·인터넷·자동이체까지 방법도 다양해졌다. 1868년 말 앤드루 카네기가 뉴욕의 한 호텔에서 이런 결심을 한다. ‘앞으로 재산을 늘리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겠다. 생활비를 뺀 나머지는 선행에 쓰겠다.’ 20여년 뒤 카네기는 ‘부의 복음’이란 책에서 “부자의 삶은 부를 일구는 전반부와 부를 나누는 후반부로 나뉘어야 한다”고 썼다. 헤밍웨이는 쿠바의 버진성당에 노벨상 상금을 기부한 후 “당신이 무엇인가를 소유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을 누군가에게 주었을 때”라고 했다.

자선냄비에 소복이 쌓이는 건 주로 코흘리개 어린이들이나 콩나물값도 깎는 주부들의 작은 정성이다. 저의가 분명치 않은 거액의 기부보다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소액의 나눔이 더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세밑 도움이 꼭 필요한 이웃에 크든 작든 정성을 나눠주는 것을 망설이지 말 일이다. 땡그랑~땡그랑~ 따뜻한 종소리와 함께 거리에 빨간 구세군 자선냄비가 걸렸다. 도심 광장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져 100도를 향해 온도를 올리고 있다. 곳곳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한 김장나눔 행사도 한창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이웃과 온정을 나누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주변을 돌아보고 누군가를 살펴보고 돌봐주는 것, 우리는 사랑이나 인정, 인간다움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1901~1978)는 인류문명의 시작을 1만5000년 전 인간의 부러진 다리뼈에서 찾았다. 1950년대 외과의사들과 함께한 한 강의 자리에서 그녀는 인간의 다리뼈, 그것도 대퇴골(넓적다리뼈)을 들어보였다.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흔적이 남아 있는 다리뼈였다. 그녀는 최초의 진정한 문명의 증거를, 인간이 동물과 진정 다르다는 증거를 고대 인류의 이 다리뼈가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퇴골은 엉덩이와 무릎을 연결하는 인체의 가장 긴 뼈이다. 그 넓적다리뼈가 부러지면 현대 의술이 없는 사회에서는 나을 때까지 6주가량 움직일 수 없다.

고대 동물의 왕국에서 다리가 부러지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고 물을 마시거나 사냥할 수도 없다. 부러진 넓적다리가 다시 붙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자신만의 생존을 도모하지 않고, 그 낙오자의 곁을 지켜주었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회복될 때까지 돌봄의 손길이 있었다는 증거다. 문명의 증거가 돌도끼 같은 도구가 아니라 돌봄의 손길을 받은 회복된 뼈라니 그 발상에 가슴 뭉클해진다. 올해는 전쟁에 고물가, 코로나19 여파까지 모든 것이 힘든 한 해였다. 그럼에도 가족과 이웃을 지키고 돌봐주는 손길 덕에 또 한 해를 무사히 넘기고 있다.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이야말로 진정 성공하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습관이라는 그의 말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타당하다.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현대인들은 ‘탐욕’의 열차에 더욱 집요하게 매달려 질주하는 것 같다. 좀더 큰 집, 좀더 멋진 자동차를 구하며 더 큰 탐욕의 소용돌이를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연말에 울리는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앞만 바라보고 내달리는 자신을 잠시 멈추고 또다른 ‘나’인 옆과 뒤의 이웃도 살펴보자고 권한다. 인드라망의 그것처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알게 모르게 상호 연결돼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의 따뜻한 온정, 물질과 내 마음을 내어 주변을 다독이는 이들의 손길을 기억하며 차디찬 12월이 끝나기 전에 마음을 전해 보자.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구세군은 올해도 사랑의 발길이 길게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얼굴 없는 천사’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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