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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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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5.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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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필휘지(一筆揮之)란 붓을 한 번 휘둘러 단숨에 써내려가는 것을 말한다. 중간에 끊어지지 않고 써내려가야 하고 가다 끊기면 그 아름다움은 사라진다. 멈추지 않는 붓의 움직임 속에 처음과 끝이 서로 조응(照應)하며 믿음과 힘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일필휘지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명상과도 같다. 그것은 삶의 깊은 차원에 이르려는 방법이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온갖 생각과 관념을 말끔히 씻어내는 마음의 청소다. 일필휘지처럼 삶이 간결하면 겉치레가 사라지고 순수함이 드러난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명확하다. 가장 높은 힘은 자신을 낮추는 골짜기에 있음을 알고 자기를 낮출 때 삶의 군더더기가 한 꺼풀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을 두고 일필휘지 같은 사람이라 말하고 싶다. 상황에 따라 때에 따라 또는 처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사람들로 지천인 요즘 세상에 그만큼 그런 사람이 드물기도 하겠지만, 나 역시 근처에도 못 가는 속물이니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이 그리운 것이다. 상황따라 변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처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절실하면 어디를 가든 ‘처음처럼’이란 말이 붓글씨나 나무에 씌어 벽에 걸려 있고, 소주 이름도 처음처럼, 사이버공간에서도 늘 처음처럼이라는 애칭이 흔하다. 예전에는 없었던 말이니 그만큼 세상인심이 변하고 상황에 따라 사람 마음이 들쭉날쭉해졌나 보다.
선거철이 되거나 어떤 일을 두고 많은 사람이 “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제가 한 말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의 말을 흔하게 듣는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초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 드물고, 약속이 지켜지는 것을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말을 자주하는 사람일수록 약속한 것을 성취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나는 정말로 중요한 말이라고 하며 다가오거나 무엇에든 ‘반드시’란 말을 즐겨 쓰는 사람 말은 대부분 믿지 않는다. 꼭 할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하는 사람이고 중요한 것은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 법이다.
조선 초기에 ‘한명회’라는 대단한 권력자가 있었다. 잘 아시는 대로 계유정난을 통하여 김종서, 황보인 등 정적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살아 생전에는 영의정을 두 번씩이나 역임하고 무려 5번에 걸쳐 功臣에 추대되었다. 더 한 것은 두 임금에게 자신의 두 딸을 시집 보내어 장인 노릇을 했으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나? 흔한 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의 막강 권력이었다.
하지만 천하의 한명회도 압구정 정자 문제로 성종 임금과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은 낙향하여 죽음을 앞두고 있을 무렵 성종으로부터 죽기 전에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말을 들려 달라고 했다. 그 때 한명회가 했다고 하는 유명한 말이 바로 始勤終怠 人之常情 願 愼終如始(시근종태 인지상정 원신종여시)이다. '처음에는 부지런하지만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것이 사람의 성정이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신중하기를 처음과 끝이 같게 하소서 그렇게 하면 성군이 되고 대업을 이룰 것입니다’라는 말이었다. 성종은 이 말을 가슴에 담고 선정을 베풀어 초반기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태평성대를 열 수 있었다.
천년 이상 세계를 호령하던 난공불락의 초강대국 로마제국은 왜 멸망했을까요?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의 멸망 원인으로 기독교를 채택하며 문화적 포용력을 잃어버린 점을 들고 있고,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한 에드워드 기번은 도덕적 타락과 무기력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로마 멸망사’의 저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는 로마의 멸망이 어느 한 순간의 일이 아니라 워낙 방대한 규모 때문에 오랜 기간 서서히 무너져 내린 것이라고 했다. 어느 것이 정확한 원인이든 분명한 것은 초기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건강한 긴장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 제국을 건설했던 원나라의 끝은 어떠했나? 원나라 말기 조정에서는 정권 쟁탈 및 황제 계승 문제를 둘러 싸고 갈등과 분열이 극에 달했고 .한족에 대한 심한 차별화 정책은 민심을 뒤숭숭하게 만들어 결국은 홍건적의 봉기를 불러오고 말았다. ‘비단옷 입고 벽돌집 사는 날 제국은 망할 것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뚫는 자는 흥할 것이다’라는 창업 군주 칭기스칸의 경계의 말을 원나라의 황실은 사치와 풍요 속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천년 신라는 또 어떠했나? 삼국통일 이후 한동안 성대를 누려왔으나 화백제도를 통해 왕위를 계승해오던 신라는 혜공왕 이후 진성여왕 대까지 132년 동안 23회에 걸쳐 왕위 쟁탈전과 권력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다 보니 왕권이 제대로 설 수가 없었다. 왕권의 약화는 중앙통제력이 상실되고 결과적으로는 호족집단들의 지역 할거와 함께 후삼국이라는 구도로 이어지게 된다.
기업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00년 기업 GM의 몰락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GM 몰락의 근본원인은 미국시장만을 고려한 제품전략, 생산방식의 혁신과 브랜드 관리의 실패, 복지제도의 확대 시행으로 인한 고비용 구조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를 GM의 경영진은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과거 성공모델에 안주하여 자기혁신 노력을 소홀히 함으로써 경쟁력 약화를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천하의 소니는 왜 수년간 적자에서 허덕이고 있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은 기업 문화의 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다. 연구개발을 숭상하고 기술을 존중하는 기업 문화가 사라지고 매출지상주의, 주가근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체하면서 소니의 몰락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소니의 기업문화가 이렇게 변화된 주요원인은 조직의 성장과 함께 관료주의가 확산되고 현재에 안주하려는 경영진의 무사안일과 오판을 꼽을 수 있다. ‘안전빵’에 올인하는 경영자들이 늘어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문화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출발은 매우 화려했다. 그러나 끝은 항상 가족과 측근의 권력 남용과 부정축재, 그리고 그 결과는 청문회와 구속으로 일관되었다. 자기관리와 주변관리가 부족했던 탓이다.
개인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들은 대체로 시작을 요란하게 한다. 해마다 1월1일이 되면 여러 가지 다짐들을 한다. 금연을 하겠다, 체중을 줄이겠다, 운동을 하겠다, 책을 한 달에 5권 이상 읽겠다 등의 약속을 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고 만다.조직의 경우도 비슷하다. 각종 비전 선포식, 혁신운동, 원가절감 캠페인 등 대대적인 구호와 퍼포먼스로 시작하지만 끝은 용두사미다. 그러다 보니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비슷비슷한 경영혁신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어 개인과 조직의 피로도만 가중시키는 결과만 가져 오게 된다. 혁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부족과 깔끔한 마무리를 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야구에서는 선발투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마무리투수다. 아무리 우수한 선발투수라도 모든 게임을 다 완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뒷문이 든든할 때 선발투수는 마음 놓고 자기의 공을 뿌릴 수 있다.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처음 시작할 때의 설렘과 긴장을 유지할 때 성공과 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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