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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송강(松江)과 솔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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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송강(松江)과 솔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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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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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낡은 생각의 잔재일 뿐인가? 이름에 뜻이 있다고? 

담양의 한 고등학교 이름을 두고 서너 해째 벌어지는 시시비비(是是非非)라고 한다. 시시비비는 옳을 시(是)와 그를 비(非)의 한자의 훈(訓 뜻)이 알려주는 대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하기’를 말한다. ‘시비’도 같은 뜻이겠다.

좋은 뜻으로, 교육의 뜻을 구현할 좋은 방법을 써서, 인재(人材)를 제대로 키워내겠다는 의지를 품은 (전남 최초의) 대안학교라고 한다. 학교의 내실(內實)과 평판(評判)을 얼핏이나마 살펴보니 그런 의욕이 든든해 보인다.

정작 시비(是非)의 주제는 명칭(名稱)이라고도 하는 그 학교의 이름 ‘솔가람’에 얽힌 지역사회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반발(反撥)이다. 

당초 ‘송강’고등학교로 문을 열었다. 어떤 이유로 최근 이름을 바꿔 새 이름 ‘솔가람’고등학교 새 간판을 달았다. 

당초 송강고의 송강은 역사 인물 정철의 호(號) 송강(松江)을 딴 것이겠다. 그의 문재(文才)를 학교의 지향(志向)으로 삼겠다는, 작명자(作名者) 또는 기관(機關)의 의지로 본다. 작명의 주체 측은 ‘송강은 학교 옆 강 이름을 딴 것’이라고 했다는 데, 이런 장난은 하지 않아야 옳다.

가사문학의 작가로 우리 교육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정철의 정치가로서의 면모는 피비린내를 풍긴다. 

기축옥사(己丑獄事)로 이 지역의 많은 선조들이 (당시 ‘정치적 실세’였던 정철로부터) 화(禍)를 입었다는, 광산 이(李) 씨 등 6개 문중 종친회의 입장은 ‘송강고’도, 새 이름 ‘솔가람고’ 이름도 마뜩치 않다. 그래서 시작된 절차가 현재 상황이다. 

그 시비는 칼로 무 자르듯 단숨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단지 납득하거나 수용할 수 없는 새 이름의 뜻과 관련한 문제를 한번은 더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名稱’(명칭)이란 낱말이 문제라며 이를 고치자고 합의하고 작업을 벌였는데, ‘이름’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명칭과 이름, 같은 뜻이다. 되레 (의미론적으로는) ‘이름’이 ‘명칭’의 의미(뜻)를 더 적실(適實)하게 품은 것으로 느껴진다.

송강과 솔가람도 위 사례와 같지 않을까? 소나무(솔) 송(松) 내 강(江)의 송강이니 뜻은 ‘소나무내’일 터이고, 가람은 강 또는 못(호수)를 이르던 옛 이름이니, ‘송강’과 ‘솔가람’은 ‘명칭’과 ‘이름’의 사이와도 같다고 보는 것이 이치다. 송강을 고쳐 솔가람이라, 좀 심한 장난일세.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따로 있다. 송강고(松江高)를 솔가람고로 (다수결로 결정했으니) 고치는 것은 정치적이다. 학교는, 교육은 ‘정치’가 아니다. 

매우 (어색하게) 들린, 그렇다면 오래 웃음거리로 또는 멸시의 주제로 회자(膾炙)될 이런 줄거리, 유감이다. 글공부하는 이의 입장을 떠나 ‘보통사람’의 생각으로도 그러하다.

그 지역의 인문적 환경은 저런 몰(沒)인문적, 탈(脫)상식적 현상을 두고 팔짱만 끼고 있는 것인가. 정치얘기가 아니다. 사람의 기본, 생각의 틀을 말하는 것이다. 염치를 잃었을까? 이름이 틀리면, 뜻이 어그러진다. 사람들 간의 사이는 인간(人間)이고, 그 틀은 인문(人文)이다. 

이름은 사(事 일)와 물(物 물, 물건) 즉 事物의 이마빡에 붙는 본질(의 명찰)이다. 추상명사건 동사건, 일이나 물건이나 저마다 자기 이마에 이름을 쓰고 산다. ‘송강’이 틀렸으면, ‘솔가람’도 옳지 않다. 제 이름을 붙여야 하는 까닭은 이런 이유 말고도 많다. 

시비는 (미래을 위해) 필요하다. 교육의 일은 최소한 백년 앞을 보고 짜자.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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