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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두 얼굴’의 한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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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두 얼굴’의 한국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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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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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국어선생 자처한 KBS, 저럴 거면 자청해 문 닫으시라.

막말로 ‘말로 밥 버는 이’들 모인 곳이 방송사다. 그 중 KBS는 나라 이름을 ‘이마빡’에 붙인 조직이다. 그 방송의 ‘말’은 어떠한가? (방송)언어의 표준이라며 돈 버는 사업도 한다.

괜한 트집 잡지 말라, 평지풍파, 남 잘못 손가락질 하는 건 덕(德) 없는 이의 습성이니, 입 다물라는 말도 듣는다. 공맹(孔孟)에 테스형(兄) 플라톤 같은 큰 선생들 이름자도 들었으니, 요즘 ‘KBS의 한국어’에 고민스러울 때도 없지 않다. 허나, 꼭 德 있는 듯 내색해야 하나?

KBS MBC를 주로 보다 뉴스 등 KBS를 끊었다. ‘혈압 오른다.’는 주위의 말 실감한다. 리모컨질 하다 문득 타이완 지진 소식 전하는 KBS를 보았다. 역시 덕을 갖는 것은 ‘약대(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것’과도 같겠다. 트집거리 또 보이니, ‘좋은 사람’ 하긴 진즉 틀렸을까.

꽤 고참인 듯한 그 여기자의 보도 내용. “... 지진 피해로 힘든 건 (주변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사정이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도움을 ‘자처’했습니다...”

스스로 뭔가 하겠다고 (남에게) 청한다는 자청(自請)과, 자기를 어떤 (다른) 사람으로 여겨 그렇게 처신한다는 자처(自處)의 차이가 뭘까? ‘언어학’의 중요한 방법론은 비슷한 말(개념)들의 차이를 선명하게 구별하는 것이다. 

저 경우 ‘자청’이래야 할 텐데... 자처에는 심지어 ‘자살하다’는 뜻도 있지 않는가. 그 기자가 ‘자처’의 민감한 뜻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밤 시간 간판 뉴스에 이어 진행된 ‘세계는 지금’이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쿠바의 (기구한 살림살이) 소식을 전해며, “우리나라와도 ‘수교’를 맺은 쿠바...”라고 말문을 열었다. 외교(外交)를 맺은(修) 것이 수교(修交)다. ‘수교했다.’거나 ‘외교(관계)를 맺었다.’고 각각 쓴다. 

修는 ‘닦거나 엮어서 만들다.(이루다)’는 뜻이다. 단정한 용모의 민완(敏腕) 아나운서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는 여성이다. ‘말의 전문가’란 명색에, 이런 이면(裏面)이 있구려. 평소에도 (어휘의) 안정감이 들쑥날쑥해 듣는 이가 불안할 때가 있었다.

이런 황당함은 1박2일 계속됐다. 다음날 ‘대구마라톤’의 중계팀은, 최근 훌륭한 마라토너가 아깝게 사망했다는 중요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최초로 2시간 1분 벽(壁)을 깬 세계기록(2시간 35초) 보유자 켈빈 키프텀(케냐)이 지난 2월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그 운명은 아마 ‘죽었다’는 殞命 또는 ‘운명교향곡’에 있는 運命(destiny 데스터니)이라는 한자어일 것이다. 두 경우 다 ‘운명을 달리하다.’는 말은 엉터리다. 저런 뜻이 될 이유가 없다.

‘유명(幽明)을 달리하다.’라는 말이 있다. 유명계(幽冥界 저승)과 그 상대되는 界인 이승 곧 밝은 곳 명(明)을 구분하고, 이 ‘구분선’을 지난 것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간 것(죽음)을 비유했다. 그게 幽와 明을,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유명’을 ‘운명’으로 잘못 알고 저런 언사를 벌이는 것이다. 방송이 저러면 시청자는 하릴없이 ‘운명을 달리하다=죽음’이라고 뇌리(腦裏)에 새긴다. 아이들은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러니 앞으로도 실패 수준의 저 막말은 계속될 것이다. 무식하다 책잡히지 않으려면 잊지 말 것.  

기자 아나운서 등 방송사의 ‘지식인’들도 이제, 유식한 문자(文字)질일랑 안하는 것이 어떨까. ‘스스로 나섰다(자청)’ ‘친구나라가 됐다(수교)’ ‘죽었다’는 식으로 하면 권위가 없나? 그리고, 사전을 확인하는 것은 지식인의 체면 손상인가? 정 싫으면 인공지능(AI)에게라도 묻든지...  

‘유식한(체 하는) 값’은 비싸다. ‘국민의 방송’이라고 그 값 덜할 까닭은 없다. 되레 더 무거운 책임 얹힐 터다. ‘말로, 천냥 빚 값는다.’면 말이 그만치 중요하다는 얘기다. 진짜 德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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