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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에 조금이나마 보탬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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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에 조금이나마 보탬되길"
  • 부천/ 민창기기자
  • 승인 2014.11.25 0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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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8년 7월 사재 105억 원을 출연해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한 (주)에스씨엘 이상춘(58^부천 상록수교회 안수집사^사진) 대표이사. 그 사이 출연금을 더 넣어 2014년 현재 120억 원을 보유한 상록수장학재단은 지금까지 1400명의 학생에게 15억여 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경북 김천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겪었던 가난의 아픔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장차 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주역들이 단지 돈 때문에 꿈을 버려서야 되겠느냐. 청년의 열의와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작은 힘을 보태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살았다. 용산 친척이 운영하던 기계 스프링공장 ‘시다’로 서울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열심히 일해 21세에 독립, 용산에 공장을 차렸다.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며 배움의 한을 풀었다. 승승장구 하던 회사는 1980년 오일쇼크의 첫 위기를 만났다. 그리고 회사가 1990년 전국적인 노사분규로 2차 위기를 만난다. 이번에는 이어지는 공장들의 부도여파로 도저히 어려움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채무업자에 시달리다 이 대표는 결국 자살을 결심하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쓰는데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이때 그동안 돈 번다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못했던 것을 절절히 회개하면서 기도했다. 주님께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거래은행지점장이 부도를 막아줘 다시 회생할 수 가 있었다. 내실경영으로 본궤도를 달렸다. 외환위기 때 경쟁업체를 인수, 회사 규모가 성큼 커졌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에스씨엘은 부천에 본사를 두고 화성과 당진, 중국 톈진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연매출 1000억 원이 넘는 굴지의 회사로 거듭났다. 이 대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4년 전 상록수장학재단을 설립했다. 회사가 더 큰 다음에 하라는 주위의 권유가 많았지만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선발학생들에게 학비 외에도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주고 연 두 차례 수련회를 열어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 강연과 토론의 기회를 만든다. 대학생과 멘토를 맺게 해 진학이나 진로상담을 하도록 관계를 형성시켜 준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사랑과 나눔, 헌신과 봉사, 보람과 기쁨의 릴레이가 이어지도록 돕고 있다. 이후 김천에 청소년전문 상록수교회를 설립했고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 난민수용소에 학교 두 곳을 지어줬다. 또 카자흐스탄에 병원을 지었고 중국 선양에도 교회 2곳을 건축해 봉헌했다. 병원과 학교, 교회는 앞으로 필요한 곳마다 지을 수 있을 때까지 짓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에 땅을 매입, 기독교를 테마로 한 ‘성지순례길’ 조성사업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27일 서울 63빌딩 주니퍼홀에서 열리는 제4회 ‘아너 소사이어티’ 총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표 이동건)의 고액 기부자 모임으로, 1억 원 이상을 일시적으로 기부하거나 5년 동안 1억 원을 나눠낼 때 가입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이상춘 대표이사는 2010년 모범기업 대통령상과 2013년 동탑산업훈장, 2014년 납세자의 날에는 아름다운 납세자 상을 받는 등 이 대표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만 찾아서 하고 있다. 그는 “나중에 하나님께서 너 세상에서 뭐하다 왔느냐고 물으실 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며 살아가려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분명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뤄주신다고 저는 믿는다. 그래서 나눔으로 시작한 나의 하산은 이제 막 첫걸음을 떼어 놓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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