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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빛을 되찾은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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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빛을 되찾은 그 날
  • 서울본사
  • 승인 2016.08.1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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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보훈청 보훈과 한준경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면서 우리나라는 독립을 맞이하였습니다. 36년 간 일제 치하에서 탄압받으며 독립만을 바랐던 우리 국민들의 열망이 이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71년 전 그 날 정오에 라디오방송을 통해 일본 천황의 항복 발표를 들은 서울 시민들은 광화문 네거리로 나와 환호하였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나온 애국인사들을 수많은 시민들이 환영해주었습니다. 남산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가 게양되었으며, 각국의 신문에는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대한민국의 독립을 알리는 기사가 났습니다. 

1945년 9월 총독부 광장의 일장기가 내려지고 일본군이 철수하였습니다. 같은 해 10월 우리나라의 첫 전국체전이었던 ‘해방경축 경기대회’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이 태극기를 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11월에는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15명의 상해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C-47 수송기를 타고 귀국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담은 사진, 신문기사를 통해 71년 전 광복의 순간을 그리다 보면 ‘빛을 되찾다’는 ‘광복’의 사전적 의미처럼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빛을 마주한 우리 민중의 심정이 어땠을까 싶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정부는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벗어난 날과 독립국으로서 정부가 수립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하였습니다.

  

36년 간 일제 치하에서 독립을 위해 온 국민이 함께 투쟁하다가 맞은 독립이기에 주권을 되찾은 그 날을 빛을 되찾은 날이라는 의미의 광복절로 이름 붙이고 우리나라의 국경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국권피탈을 위한 수순을 밟고 있던 일제에 맞서 180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항일 의병투쟁부터 무단통치에 맞서 거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 의식개혁을 통한 독립을 지향한 신간회 등의 단체가 벌인 사회운동 그리고 국내 뿐 아니라 만주 등 국외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항일무장투쟁 등 우리 민중이 벌인 독립운동의 여정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에 불리하게만 작용했던 국제정세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이 보여준 굳건한 독립 의지와 이를 위한 노력에 감동하게 됩니다. 그래서 2015년 광복70주년의 슬로건 ‘광복70주년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에서 독립을 위한 투쟁의 과정을 ‘위대한 여정’이라 표현했던 것이 뭉클하게 와닿습니다.

우리나라의 독립이 연합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찾아왔고, 우리의 온전한 힘으로 이끌어낸 것이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광복군이 계획했던 국내진입작전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더라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열강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선조들의 독립을 위한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1909년 하얼빈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 1919년 3․1운동 당시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나눠주다 체포되어 19살의 나이에 숨져간 유관순 열사, 1932년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체포되어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 1932년 일왕의 생일행사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상하이 파견군 대장 등을 사살하고 체포되어 총살당한 윤봉길 의사, 그리고 3․1운동 당시 일제의 총칼 앞에 맨몸으로 맞서다 숨져간 수천명의 민중들과 일제의 단발령․창씨개명에 맞섰던 수많은 사람들까지 나라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수많은 순국선열․애국지사의 희생과 공헌이 없었다면 독립 후에도 우리는 당당히 주권을 주장할 수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지킬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분들에게 부끄러운 후손이 되지 않도록 안중근 의사의 유해 봉환,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죄 받기, 독립유공자 및 유족분들에 대한 보상 및 예우 확대 등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는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대가 되기 위해 오늘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성별‧나이‧지위를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분들의 노력으로 맞이한 71년 전 광복의 그 날을 기쁘지만 무겁게 기억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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