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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선 아리랑시장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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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선 아리랑시장의 즐거움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7.04.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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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변화는 무죄다. 번창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지킬 것은 지키되 상품도 바꾸고 사람도 바꾸고 시스템도 끊임없이 바꾸어야 한다.오늘의 시대에는 안주하고 머무르는 것은 유죄다. 나를 위하고 시장을 위하고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모두 바꾸고 변화해야 한다. 목표는 오로지 시장의 생존·번영·발전에 맞춰져야 한다. 어떤 시장도 완벽한 시장은 없다. 그러나 비전과 목표를 확고히 하고 지자체·시장상인·전문가가 함께하면 고객이 감동하고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다.

지방 곳곳에 자리 잡은 전통시장은 이제 ‘생존이냐 폐쇄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대다수 전통시장에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전통시장들도 있다. 지역 상주인구가 적은데도 상인과 지자체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실천해 부흥을 이룬 ‘정선아리랑시장’의 사례를 보면 노력 여하에 따라 전통시장도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선군은 총 인구 3만8412명, 군 소재지인 정선읍 인구도 1만1206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1999년 3월 17일 개장한 정선아리랑시장은 2일, 7일에는 5일장이 서고 토요일에는 주말장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어 평일에는 700~800여 명, 장날에는 5000~6000여 명, 주말장에는  2000~3000여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됐다.

오일장은 대형마트가 주지 못하는 소통이고 교감이다. 정선오일장은 쇼핑 부문 2012년 ‘한국관광의 별’이다. 우리나라 오일장을 대표한다. 옛 재래시장의 정감 어린 풍경이 고스란하다. 여기에 풍성한 이벤트가 장터를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 물론 풍성한 먹을거리도 빠뜨릴 수 없다.

정선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건을 잔뜩 실은 트럭이 속속 도착하고 간이 천막이 빼곡히 이마를 맞댄 간이장터가 생긴다. 그 간이 천막 아래에는 오늘 가져온 물건들을 최대한 눈에 띄게 쌓거나 펼쳐놓고 소리 높여 자신의 물건을 선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값을 비교하고 흥정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곳은 종일 시끌벅적하다. 그들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쉬지 않고 자신의 물건의 장점을 외치고 있다. 그것이 뺏고 뺏기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리라.

필자는 오일장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은 상설시장이나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상권이 정형화된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이기심이나 욕망을 자랑처럼 당당히 드러내놓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다. 그곳에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몸을 가동해도 흉이 되지 않는 분방함이 있어서 좋다.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내 안에 갇혀 있는 이기심을 잠시나마 꺼내 흥청망청 풀어줄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그런지 상설시장이나 대형마트나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얼마 못 가서 눈이 깔끄럽고 다리가 아프고 피로가 몰려오지만 오일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우울했던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생기가 솟아나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아진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눈동자를 반짝반짝 굴리며 얼굴이 한껏 상기된 시장 사람들을 보노라면 이곳이 오일장이 아니라 물건 팔기, 물건 사기 경기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곡물은 곡물끼리, 채소는 채소끼리, 과일은 과일끼리, 해산물은 해산물끼리 상대가 되어 점수 하나 나면 얼싸안고 좋아 날뛰는 운동선수나 관중처럼 자기 물건을 소리소리 지르며 선전하다 팔리면 신바람이 절로 나고, 물건을 최대한 싸게 사기 위해 장을 돌며 물건의 질과 값을 저울질하는 재미에 밥때도 잊어버릴 지경인 물건 팔기, 물건 사기 경기.

그렇지 않은가! 스포츠경기장이 아니면 저처럼 나를 응원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소리소리 지르고 모르는 사람끼리 얼싸안기도 하는, 상대의 불행과 맞바꾼 승리의 기쁨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스포츠경기장이 아니면 효율적인 상생을 명목으로 우정과 동료애를 주창하면서도 그들을 성적순으로 또는 능력 순으로 구분해 줄을 세우는 현대물질사회의 모순과 이율배반 속에 갇힌 내면의 원시성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만약에 스포츠경기가 현대인들에게 억압된 이기심이나 공격성을 대리 표출할 수 있는 배수구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이 땅에 스포츠경기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즘 TV에 스포츠 프로그램이 많이 생기는 현상도, 스포츠 선수들이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도 어쩌면 현대물질사회에 강탈당한 인간 내면의 원시성이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인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돌아가는 시간인데 팔리지 않은 물건을 수북이 쌓아놓고 초조한 표정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 싸웠지만 패하고 돌아가는 복싱선수가 오버랩되기도 한다.시장은 처음 10일장이었으나 임란 후에 5일장으로 변했다. 농경사회는 주로 5행에 따라 4일간 일하고 5일째는 쉬었다. 이날 물건을 교환키 위해 모인 곳이 5일장이다.

5일장(전통시장)이 열리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일까. 숙종 때 홍만선이 실생활에 필요한 백과사전식으로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나온다. 또 1908년 고종 때 재정비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도 5일장의 유래가 나온다. 이에 의하면 처음의 10일장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수가 증가해 5일장으로 변하고, 17세기 후반에는 전국적으로 일반화됐다.

5일장에는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이 모여 물건의 거래 및 교환할 뿐만 아니라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기도 했다. 또한 이때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제각기 광대, 악단, 곡마장 등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연을 펼치기도 하는 술의 장이기도 했다. 5일장의 주된 기능은 물건을 팔러 다니는 전문 장꾼들도 있었지만, 평상시에는 생업에 종사하다 장날이 되면 생산물의 여분을 장에 가서 팔거나 필요한 물건을 싸 오기 위한 곳이 되기도 했다.

시장은 왜 5일마다 열리게 됐을까. 15세기 말에는 10일 간격으로 10일장이 열렸다. 이러던 장시가 임란과 병란을 거치면서 피난 도중에 시장의 수가 증가하더니, 17세기 후반에는 5일 간격으로 시장이 열리게 됐다. 이는 오행설(五行說)에 근거를 두었다고 본다. 오행은 `金ㆍ木ㆍ水ㆍ火ㆍ土`로 이는 인간의 육체에서 비롯된다. 인체의 오장과 오행을 연관시켜 보면 金은 폐장, 木은 간장, 水는 신장, 火는 심장, 土는 비장으로 본다. 농경을 주로 하던 때는 4일간 일하고 5일째는 쉬면 생활리듬이 적절한 것으로 보았다. 이때 쉬는 날에 남는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서로가 교환하기 위해 사람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먹거리, 볼거리, 놀 거리가 생겨 장이 형성된 것이다.

주름진 얼굴에 몇 가지 안 되는 나물 종류를 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 왁자지껄한 상인의 호객소리, 그런가 하면 먹음직스럽게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누릿한 빈대떡과 메밀전병에 막걸리를 자시는 어르신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우리네 서민들의 꾸밈없는 삶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없는 것 없이 잘 정리·정돈된 다양한 상품들을 스쳐 지나면서 그저 아무런 감흥도 없이 기계적으로 구입하는 요즘 세태에 이런 인간미가 풍기는 장날이 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것이 아니다.

세상 사는 맛이 이런 건데 지금껏 잊고 지내다니, 모처럼 나온 김에 메밀부치기 한판을 뚝딱 해치우고 본격적인 구경에 나섰다. 산나물,생선, 채소, 과일, 신발, 여러 가지 옷가지, 현장에서 만드는 취떡, 각종 튀김과 어디 그뿐인가 마음껏 맛보고 사가라고 외치는 정선취떡 파는 아저씨의 인상이 너그럽게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 이것저것 한 가지씩 공짜로 맛보는 재미도 괜찮다. 물건값이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보다 싼지 비싼지, 신선한지, 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지인들 말에 의하면 훨씬 싸고, 상품도 신선하다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지난 12일 장날 정선 오일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생각했던 것보다 예상 외로 많은 관광객들과 손님들이 장을 보러온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떠밀리다시피 시장 안을 다니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대형마트에 잘 포장돼 진열돼 있는 상품을 보는 것보다 훨씬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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