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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개월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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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개월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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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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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벧엘의집에는 당사자였다가 일꾼이 되어 노숙인 당사자들을 돕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내가 알기로는 벧엘의집 뿐만 노숙인 당사자가 노숙인시설에서 일꾼으로 일하는 기관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당사자가 일꾼으로 종사하는 곳이 비단 노숙인 시설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복지분야에는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당사자 출신의 일꾼들이 가장 많은 분야는 장애인분야일 것이다. 장애인분야는 당사자가 기관 장으로 있는 경우도 있고 기관 전체 일꾼이 장애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당사자가 관련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과부의 심정은 홀아비가 가장 잘 안다는 속담처럼 누구보다 당 사자의 상황이나 상태,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노숙인시설은 장애인분야 등 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노숙인은 노숙으로 전락하는 경로가 사회구조적 요인인 빈곤의 대물림, 취약한 사회안전망, 도태된 노동기술이나 노동력, 빚으로 인한 신용불량 등으로 빈곤상태에서 노숙인으로 전락하기에 사회복귀 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양태를 띤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한 번 도태된 사람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간다 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숙인 당사자가 그들을 돕는 일꾼의 자리에 있다고 하여 당장 그들의 삶이 바뀌는 것도 자 활에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그런 희망을 가지고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어쩌면 능력이 있는 사람이 라면 비록 노숙위기로 전락할 만한 경제적 충격이 오더라도 그 상황을 잘 극복하고 노숙으로 전락하지는 않 는다.

간혹 노숙인으로 전락했더라도 쉽게 노숙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노숙인의 자활이나 사회복귀와 관련해 서는 단순히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자활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집스럽게 노숙인 당사자를 벧엘의집 일꾼으로 세우는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처음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벧엘의집 초창기 미국 사회복지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했던 LA 미션센 터에서부터이다. LA 미션센터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홈리스센터로 벧엘의집과 비슷하게 거리급식과 상담, 일자리제공, 쉼터, 거리홈리스 구호활동, 무료진료 등을 하는 기관이었다.

당시 우리 일행을 안내했던 매니저도 홈리스로 전락하기 전에는 펀드매니저였는데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 으로 거리를 방황하다가 미션센터를 통해 자활에 성공한 후 다시 펀드매니저로 일하다가 센터장의 권유로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기였다. 실패의 계기가 있었다면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노숙인 대부분 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회로부터 도태되어 노숙의 자리로 전락하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길이 여간 힘든 것 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대부분 내일의 희망을 포기해 버린다 하여 그들에게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곳에서 일을 하도록 하여 다시 일어서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다. 처음 일을 한 사람은 쪽방주민으로 10년 동안 있다가 정년퇴임했지만 여전히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록 완전한 자활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에게 벧엘의집 10년은 그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기간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일을 하다가 쉽게 포기했다. 그래서 제발 3 개월만이라도 버텨달라는 바램으로 3개월이란 숫자가 내게는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올해 벧엘의집 울안공동체에 야간당직 자리가 새롭게 생겨났다. 마침 아주 오래전에 울안공동체에서 생활 하다가 퇴소하여 막노동을 하며 쪽방생활을 하는 김 씨가 있다. 노숙인 자활체계로 본다면 쉼터생활에서 자립퇴소를 했으니 자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바뀐 것이 거의 없는 노숙 당시와 울 안공동체 이후의 삶의 양태는 엇비슷했다.

그런 그가 하루는 자신의 고된 삶을 토로하기 위해 만취상태로 날 찾아왔다가 울안공동체에서 생활하던 분 이 벧엘일꾼이 되어 결재를 받으러 온 것을 보고 자기도 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으니 벧엘의집에서 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여 야간당직자를 채용해야 하니 당직근무라도 하겠느냐고 했다. 한 번 해보겠다고 하여 지금 네가 말하 는 소리를 너의 소리로 듣지 않고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는 소리로 들을 테니 일주일간 신중히 고민하고 날 찾아올 때는 맨 정신으로 오라고 하고는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벧엘일꾼들을 설득하여 김 씨의 이력서를 내도록 해 보자고 했다. 그런데 불안하다. 지금까지 경 험을 보면 대부분 첫 달 월급을 받으면 사라지고 두 달 일하다가 그만두고, 일년만에 그만 두는 등 참 많이 도 중도에서 포기했기에 그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음으로는 또 실패하더라도 3개 월만을 되뇌었다.

그런데 기적과 같이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아직 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에게 말했던, 잘 하려고 하기 보다는 분명히 위기의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마음 단단히 먹고 그 위기를 한 번 두 번 넘기 다 보면 잘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런데 위기도 없이 3개월을 거뜬히 해낸 것이다.

분명 그에게도 위기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만 한다면 한 번 두 번 위기를 넘어가며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는 어떻게 되든 지금은 잘 가고 있으니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믿고 가자.

[전국매일신문 기고] 원용철 벧엘의집 담당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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