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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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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나이테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11.0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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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나이테
           - 이임선作

내 마음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당신인 줄 알았습니다

지난여름
격정의 태양을 삭히며
비가 된 당신

갈바람이 손짓할 때마다
잠자리 떼 창공에 수놓을 때마다
당신 발걸음이
가까워짐을 알았습니다

비가 되어 오시는 당신
지친 여심 적시느라 그리했나요
진정 그 길이
당신이 오시는 길이었나요

황혼의 삶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기다림은 수많은 탑을 가슴에 쌓기다. 쌓고 무너지면 또 쌓았다가 더 높이 쌓는다. 
기다린 만큼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커진다. 기다림의 탑 높이에 견주는 것은 없다. 
그것이 원망이 되어 허물어질 때는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지만 반드시 원망이 따른다. 

나무는 해가 거듭될수록 속에 나이테를 만들지만 사람은 기다림으로 나이테를 쌓는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상처의 흔적이다. 

그걸 지워내기는 어렵다.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하다. 
사랑의 기다림은 더 크고 넓어서 나이테의 둘레도 그만큼 크지만 그것을 인지하고 풀어내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나이테를 풀어내는 순간이 모든 것을 잊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임선 시인은 사랑의 기다림을 나무의 나이테에 비유하여 그리움의 탑을 세웠다. 
빗방울 소리에도 님이 오시는 줄 알고 격정의 태양 빛에서도 비에 젖은 그리움을 태운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다. 
마음을 꺼내 보일 수가 없으며 불구덩이에 던져도 태워지지 않는다. 

그게 사랑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기다림이 갈바람 속에서 손짓하는 것이 보이고 잠자리 떼의 날갯짓에서도 걸음 소리를 듣게 한다. 
그러다가 맞이한 황혼은 사랑을 갈무리하게 하지만 그만큼의 나이테를 쌓은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모든 기다림은 그렇다. 
금방 올 것 같아 멈출 수가 없으며 만나면 다시 헤어지지 않으려는 고집을 피우지만 다시 헤어지고 아픈 나이테를 키운다. 
사랑이라는 말 한마디 없이 사랑을 읊은 시인의 가슴은 단단하게 굳은 나이테가 뚜렷하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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