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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최재형 집안 애국가 4절에 대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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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최재형 집안 애국가 4절에 대한 ‘예상’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8.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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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예상’이란 말을 ‘생각’과 같은 뜻으로 쓰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면 “뭐가 다른데...”하고 반문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예상=생각’이라고 알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TV나 소셜미디어 등의 여러 대화와 글에서 관찰한 것이다. 기자나 방송인 등 말과 글로 먹고 사는 ‘전문인’들의 언어에서도 보이기 시작하니, 머지않아 우리 말글의 일반적인 상황이나 유행이 될 수도 있겠다.  

대충 비슷하면 그냥 쓰면 되지 않느냐고, 대동소이(大同小異)란 말 모르냐고 항변할 이도 있겠다. 그러나 이 차이(差異)를 구분할 수 있도록 배우고 읽고 생각하는 것이 공부이고, 그게 모여 문화 아닌가. ‘예상’과 ‘생각’, 다른지 모르면 틀린 것이다.

말은 일상에서 늘 쓰는 것이지만, 철학과 우주물리학도 말로 한다. 잘못된 계약서 구두점 때문에 큰 손해 봤다는, 학교 때 배운 사례와도 통한다. 생각을 붙잡아 놓은 것이 언어이고, 이 언어와 결합된 생각은 다음 단계에서 다른 여러 생각을 불러온다. 창의력(創意力)의 실체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예상과 생각의 차이(差異) 즉 다른 점을 모르면 틀린 말을 하게 된다. 계약서나 외교문서라면 이 오류(誤謬)는 큰 손실이나 분쟁을 부를 수 있다.

예상은 ‘미리(豫 예) 상상(想像 생각)한다’는 말이다. 豫는 예정 예측 예방 예약 예비 예매(豫買·미리 사는 것) 예매(豫賣·미리 파는 것) 예감 예보 예산 등과 같이, 사전(事前)에 (뭔가를) 한다, 미리 한다는 말에 쓰이는 단어다.

‘예상=생각’의 등식은 예상이라는 두 음절 중 절반인 ‘예’의 뜻을 무시한 것이다. 글자의 일점(一點) 일획(一劃)에도 의미 없는 것은 없다. 하물며 ‘미리’의 뜻 글자를 무시해 버리다니.

그림이 바탕인 한자(漢字)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제 (독립된) 뜻을 가진 한 단어다. 예상은 豫와 想을 합친 숙어(熟語 익은말)적 활용으로 한국어에서는 한 단어처럼 쓰이는 한자어다.

위에서 살핀 여러 활용 사례에서 ‘예’를 빼면 우리가 의도하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례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한 매체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 최재형 “며느리도 같은 마음” 애국가 열창 논란...예상보다 짙은 보수색채

식구 모임에서 며느리 손자들까지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다는 얘기와 이를 입증하는 사진을 실었다. 최 씨나 선거캠프 측의 어떤 의도를 담은 판단이었으리라. ‘보통의 애국적인 가정’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상상도 못할 장면이다.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 제목의 ‘예상’은 ‘생각’이라야 적절하다. 최 전 원장의 보수적인 정도를 ‘미리 상상한 것’은 어색하고도 이상하다. 어법상으로도 그렇고, 최 씨와 며느리들의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사실관계와 언어적절성을 점검하는 그 언론사의 시스템(데스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내가 데스크라면 저렇게 놔두지 않는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례들을 톺아보니, 이런 현상은 글자 ‘豫’에 대한 인식이 없이 ‘예상’이라는 말을 만나게 된 까닭으로 추측된다. 곁에서 꼼꼼히 잡아주는 기능이 필요한 것이다.

비슷하다고 말을 대충 쓰는 것은, 병원의 수술이나 화학실의 실험에서 필수적인 정교(精巧)함을 무시하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겠다. 시차(時差)는 있겠지만, 그 언어가 빚을 생각의 세계는 조만간 망가진다. 의료사고나 실험실 폭발참사 등도 흡사하지 않을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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