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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고스톱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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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고스톱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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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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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봄비가 여느 때와는 달리 죽죽 내린다. 농부들에게 비 오는 날은 우중명절이라지만 요즈음은 비닐하우스 농사로 사계절 일을 할 수 있는 전천후 농사가 되었다. 모처럼 친구네 집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비로 인하여 공사판 일을 못하게 된 동네 친구들이 떼로 몰려들어 호미자루 내 던지고 합류했다.

친구들은 집에 빈손으로 들어가지 말고 한 푼이라도 쥐고 들어가려면 한 판 때려야 한다며 화투를 펴 들었다. 친구 댁이 새참 먹으라고 갖다 놓은 막걸리와 빈대떡을 곁들이니 흥까지 절로 났다. 밍크담요도 필요 없고 담배냄새와 손때에 찌든 군용담요 한 장이면 충분하다. 밖에는 눈발 분분히 흩날리는 대신 빗소리 죽죽 들리는데 분위기 처지기 전에 패 돌리란다.

화투짝 넘기니 난초가 활짝 피기도하고 손끝에서는 매화 꽃잎이 날리기도 했으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흑싸리에 꽃이 피어 홍싸리가 되었다. 화투에 몰두하다가 화장실도 못 가고 있는데 영철이가 화투판 한가운데다 똥을 자배기로 싸 놨다. 냄새 난다며 국화잎과 단풍잎으로 덮어 놓니 봄배추 거름으로 쓴다며 기철이가 몽땅 쓸어가 버렸다.

화투판에서 진짜 성격이 나온다더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점점 말라붙고 목소리가 커진다. “길동이 너는 빠져. 국가대표가 조기축구팀에 끼어들었으니 당최 게임이 돼야지.” “말마라. 단속이 심해서 하우스에서 A매치 뛰어 본 지가 하도 오래돼 예전 같지 않다. 워밍업이나 하게 좀 봐줘라.”

비닐하우스 지붕이 뚫렸는지 화투판에 비 폭탄이 떨어졌다. 빨리 비 가림하게 피 한 장씩 걷어 달란다. 신경질 섞인 목소리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화투판도 파투 날 때가 거의 돼가는 것 같다. “이 사람아. 철수가 점수가 크게 날 것 같으니까 그럴 때 나 청단 한 장 갖다 놓은 것을 보았으면 얼른 청단 한 장을 어시스트해서 견제해야지 어휴 답답해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야.”

아무래도 화투판이 파투가 나겠다 싶은데, 화투판에 벼락이 떨어졌다. 칠 홍싸리 밭에서 뛰던 멧돼지가 뛰어들 듯 누군가 문을 박차고 번개처럼 뛰어들더니만 이내 천둥이 울렸다. “이 급살을 맞을 인간은 시간만 나면 화투질이야” 국가대표 마나님이 뛰어들어 화투판을 뒤집어 버렸다.

화투장이 사방으로 튀어나가듯 화투 패거리들도 벌써 밖으로 내달음질 치면서 파투가 났다. 바닥에 널려 있던 팔 열끗의 기러기 세 마리도 혼비백산하여 도망가서 꺼먼 민둥산만 보였다. 기러기 꾀꼬리 놀라서 날아가고 흑싸리밭의 참새는 뒤집어진 화투에 깔려 죽겠다고 짹짹거리는데 친구 한 놈만 희색이 만연하다. 껍질 갖다 놓은 것이 적어 피박 쓸 판에 파투가 났으니 혼자 좋아 죽겠단다.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섰는데 파편으로 튀어 내 몸에 붙어 있던 화투 한 장이 떨어졌다. 놀라서 줄행랑 친 꾀꼬리가 앉았던 매화 가지였다. 처마 밑에서 담배 연기를 연신 내 뿜으며 허공을 응시하는 국가대표는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안절부절하고 있다.

집안에서 나오는 푸념 소리는 대단했다. 노름에 빠져서 비닐하우스를 집 삼아 사는 저놈의 인간 때문에 자신의 꼴이 처량하단다. 역시 국가대표 마누라는 화투 국가대표를 한 번에 깨 버리는 특공무술을 겸비하고 있었다. 뻑, 따닥, 쪽, 판쓰리, 폭탄, 역고 등 온갖 풍파를 견디어 낸 국가대표도 한숨만 쉴 뿐이다.

게다가 말을 듣고 보니 집이 두 채다. 주택난으로 집 장만이 어려운 지금 세상에 집이 두 채면 됐지. 요즈음 보면 아파트 이름도 외제 이름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데 ‘하우스’라는 조제되지 않은 원이름 그대로인 하우스와 비닐하우스 합해서 집이 두 채다. 집이 두 채 이면서도 1가구 2주택에 부과되는 중과세커녕 세금 자체를 안 내고 산다. 속 뒤집어지는 이죽거리는 소리 좀 작작 하란다.

국가대표 댁은 아직까지도 살림 파투 안 내고 잘 살고 있고, 국가대표는 은퇴하여 동네 조기회 급 노름판 뒷전에서 관람객 노릇 하고 있다. 기상천외(奇想天外). 코로나19를 피해 남해바다 위 뗏목 하우스에서 고스톱을 친 일행이 해경에 덜미를 잡혔다는 뉴스가 있다. 이정도 정성이면 인정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래서 도박이 무섭구나 싶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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