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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네팔로 날아간 한국의 젖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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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네팔로 날아간 한국의 젖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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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4.0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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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낙농업은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영국 등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안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발달한 농업이다. 이들 지역은 토지가 비옥하지 않고 연중 일조량(日照量)이 부족한 지역이다. 대신 연중 서늘하고 비가 많은 기후로 인해 목초지가 잘 형성되는데, 이러한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곡물재배와 함께 가축사육을 하는 복합농업이 발달했다.

특히 젖소를 이용해 우유를 얻거나, 우유를 이용한 치즈나 버터 등 유제품을 만드는 낙농업이 유럽의 산업혁명과 더불어 소비가 늘어나면서 상업농업과 문화농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유럽의 전통적인 낙농문화는 유럽인의 이주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 등 오늘날 세계적인 낙농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1902년 젖소 품종인 ‘홀스타인’이 들어온 후 소 사육이 증가하면서 1937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유회사인 경성우유농업조합이 탄생했다. 광복직후 서울우유로 간판을 바꾼 이 회사는 우리나라 우유 역사의 기반이 됐다. 그러던 중 1950년 6·25전쟁으로 가축도 씨가 마를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봤다. 참담한 상황에서 미국의 농업분야 자선기관인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은 1952년부터 197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젖소(897마리)·황소(58마리)·돼지·닭 등 가축 3,200여 마리와 종란(21만8,000개), 꿀벌(150만 마리)까지 한국에 보내줬다. 기적적인 ‘노아의 방주(Noah's Ark)작전’ 덕분에 우리나라가 축산업이 도약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1962년 낙농장려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1,000마리의 젖소를 도입해 농가에 보급했다. 바로 이듬해 1월 농협중앙회가 가축인공수정소를 설립하고 인공수정을 실시했다.

이후 정부는 서독과 뉴질랜드 등 낙농 선진국의 낙농기술을 도입하고, 우유생산증대를 위한 우량종 보급 등을 통해 낙농업을 지원했다. 이에 힘입어 1962년 젖소 사육농가가 676호에서 2022년 5,932호(39만 마리)로 급격히 증가했다. 낙농업 관련 기업도 늘어나 1964년 남양유업을 시작으로 부산우유협동합, 비락우유, 메도골드유업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971년에는 대관령 삼양목장도 설립되면서 낙농업과 우유산업이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젖소 1마리당 연간 우유 생산량은 10,412kg(2021년 기준)으로 세계 5위 낙농 선진국으로 꼽힌다. 이스라엘이 1위(12,512kg), 미국(11,119kg), 캐나다(10,852kg), 스페인(10,786kg)이 우리나라 앞에 있다.

낙농 선진국이 된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국의 농장에서 혈통과 건강 상태를 확인해 뽑힌 101마리의 어린 젖소들은 비행기를 태워 네팔로 보냈다. 생우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건 우리나라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70년 전 미국에서 받은 ‘나눔의 가치’를 네팔에 돌려 준 것이다. 젖소 101마리뿐 아니라 젖소 사육에 대한 기술교육도 전할 예정이다.

네팔은 전체 인구의 약 90%가 농촌에서 살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전국에 약 750만 마리의 젖소를 사육하고 있다. 낙농업은 국내총생산(GDP)의 9%를 차지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유 생산량이 낮은 데 있다. 토종 젖소 한 마리의 연간 산유량은 1,000kg, 우리나라 젖소 산유량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2021년 네팔 정부는 우리나라에 젖소를 요청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불과 70년 전에 낙농의 불모지였고, 목초지가 부족한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한 ‘한국형 젖소’가 네팔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본 것이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우유는 선망의 음식이었다.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더욱 애착이 갔다. 그 시절 병에 든 서울우유는 중산층 가정에나 맛보는 특별한 것이었다. 바나나 같은 열대과일에 홀렸던 것처럼 우유는 닿을 수 없는 갈증이었다. 우유도 바나나도 이제는 넘쳐난다. 아무쪼록 101마리의 K-젖소가 네팔에서 기적을 이뤄 빈곤을 물리치고, 행복한 삶의 밑바탕이 돼 주는 반가운 소식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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