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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레시피와 음식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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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레시피와 음식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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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9.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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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문헌 없어 실체 없다고? 그럼 남도밥상은 ‘뻥’인감?

음식은, 생활에 고여 맺힌 (그) 겨레와 지역의 슬기다. 보석 같은 문화의 결정(結晶)이다. 먹는 것이 먹는 이들의 본디가 되는, 생명현상의 중요한 요소다. 인류 존재의 여러 형태를 결정(決定)하는 생명의 화학(化學)이다. 그 화학의 핵심은 요리다.

요리는 마음과 레시피 즉 정서(情緖)와 요령(要領)의 합체다. 마음과 레시피는 종이에 줄을 그어 가위로 잘라내는 본뜨기와 같을 수 없다. 물리학과 화학의 차이와 비유할 수 있을까? 재료에 영혼을 불어넣는 작업인 것이니.

레시피(recipe)는 요리의 절차, 음식과 관련된 방법론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음식관련 문헌(文獻)도 이 방법론의 한 갈래겠다.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도문대작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의 고전(古典)은 옛 음식의 종류와 형태를 고증하고, 재현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이런 의문이 쉬이 일어난다. 음식은 ‘전라도음식’이나 남도밥상‘ 같은 이름으로 대체로 호남지역을 우위로 친다. 그런데 음식문헌 즉 음식관련 (기록의) 고전은 영남(嶺南)과 관동(關東)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어 음식 원형의 재현과 이에 따른 음식문화 발전의 계기로 작용해왔다. 

세계적인 인기 드라마 이영애 ’대장금‘의 발상(發想)이 된 음식디미방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재현(복원)에 큰 재원(財源)이 투자되고 있다는 수운잡방도 비슷하다. 이런 문헌은 궁중음식 부문의 체계와 함께 우리의 생활문화 즉 전통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호남지역에선 저런 문헌이 나오지 않을까? 학계에서는 ’문헌 부족으로 연구할 대상이 없으니...‘하는 말도 나온다. 심지어 인문(학)적 전통이 부족한 것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손에 쥘 수 있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남도의 음식문화는 이대로 스러져야 옳은 것인가. 누가 이 대목의 불합리를 막아낼 것인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의병(義兵)의 역사를 보자. 임진왜란 때처럼 인내천(人乃天·사람이 곧 하늘이니)의 깃발 내건 죽창(竹槍)든 동학혁명 농민군은 일가친척까지 씨가 말랐다. 친일(親日) 분자들이 왜놈의 군대를 안내했고, 이들은 쌓은 시체가 산이 되도록 다 죽였다. 

구한말(舊韓末), 그들이 이 땅, 특히 호남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잊을 수 없다. 조상들의 그 참혹한 거룩함에 새삼 가슴 여밀 일이다. 농민이건 선비건 ’뜻‘을 가진 이는 다 죽었다. 

살육(殺戮)질 왜적이 우리 집안이나 기관 등의 기록 즉 문헌을 잘 보존해 주었을까? 일본의 우리 문화유산이 왜 어떤 절차로 거기 있게 됐을까도 함께 생각할 일이다.

역사를 함께 생각하지 않으니 ’문헌 없으니 문화 없다.‘는 폭력적인 생각마저 부끄러운지 모르고 고개 드는 것이다. 어디건 생활의 슬기와 그 기록은 있다.

파괴의 터전에서도 종가(宗家) 등의 명문가에서는 봉제사(奉祭祀·제사 모심) 접빈객(接賓客·손님 접대)의 전통을 기록으로 남겼다. 세상 급히 바뀌며 손실 많긴 했지만 서지학(書誌學)이나 지역사의 연구가 진행되면서 묻혔던 음식문헌이 나오고 있다.

나주 다도면에서 발견돼 몇 해 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풍산 홍(洪)씨 석애 문중(門中)의 음식보(飮食譜)도 그 중 하나다. 10월초의 남도음식문화큰잔치(여수)에서 음식보를 비롯한 이 지역 종가의 기품 있는 음식들이, 일부나마 원형 재현의 과정을 거쳐 일반에 선보인다.

기록에 의한 전통의 복원이니, ’(시)어머니 어께 너머로 배운 손맛‘으로 설명되어온 남도음식에 새 국면(局面)이 열리는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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