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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나와 우리, 저와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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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나와 우리, 저와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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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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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박명림 교수와 아시안게임의 ‘저희(나라)’의 비교 고찰

‘저희 나라’란 말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기이다. 귀에 거슬린다는 뜻임을 독자 여러분들은 이미 아시리라. 항저우의 아시안게임, 흥미진진하다. 

선수들 각오나 경기 후 소감에다 중계방송팀(아나운서, 해설자)의 말에서 ‘저희 나라’가 나오면, 좋았던 분위기가 갑자기 망가진다. 이 말의 빈도(頻度)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잦다.

어법(語法)의 측면으로도 그렇지만, 뜻을 새겨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다. 너와 나의 나라 대한(大韓)을 스스로 낮춰 겸양(謙讓)하는 것이 저 ‘저희 나라’다. 잘못이다. 응당 ‘우리 나라’여야 한다. 심지어 이런 말도 나왔다. 인용한다.

“이래서 우리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저희 나라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것입니다.” 

어느 방송에서 중계방송팀이 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계방송팀을 이르는 말이다. ‘말’이 전문인 아나운서가 그랬는지, 운동선수 출신 해설자가 그랬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허나 누구의 말이건 그 결과 또는 악영향은 한 가지다. 이런 사례, 수도 없이 많다.

말하는 사람(자신)을 높인 것이다. ‘대한’이란 이름의,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民 민)를 채택한 나라(國 국)인 우리나라를 낮춰 부른 것이다. 상대방인 일본에게 겸양을 바친 것일까. 

왜 그랬지? ‘저희’와 ‘우리’의 차이를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거꾸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일종의 약속인 (국어) 맞춤법과는 다른 차원의 망발(妄發)이다. 뜻 즉 본질의 훼손이다. 

‘나’의 복수는 ‘우리’다. ‘나’를 (어른 또는 상급자에게) 낮추는 말은 ‘저’다. ‘저’의 복수가 ‘저희’다. 

이런 활용은 시청자의 기억 속에 박힌다. 상식적으로도, 특히 방송에서 쓰이는 말은 공공(公共)언어다.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영향을 미치거나 책임을 가지는 말인 것이다.   

그 걸 누가 모르느냐고? 똥개 훈련시키니? 듣는 사람 모욕하지 말라는 따위 얘기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시의적절(時宜適切), 즉 때(와 경우)에 맞게 활용할 수 없다면 그 말은 쉬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굳이 중견 학자 한 분의 존함을 들어 이런 오용(誤用)의 사례로 삼기로 한 것을 양해하시기 바란다. 강연에도 자주 나서는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박명림 교수가 자주 쓰는 말 ‘저희’는, 거의 모두가 ‘우리’로 고쳐야 하는 말이다.  

귀한 통찰 전해주는데 ‘도구’인 말이 좀 덜 적절했기로 그렇게 현미경 대고 ‘지적질’을 하면 되겠는가, 이렇게 필자를 꾸중할 수도 있다. 실은 참고 들으리라 여려 번 마음먹기도 했다. 

그러나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치기에 그(의) 영향력은 너무 크다, 많은 이들이 저 말투를 따라하게 된다. 공공의 이익을 염두에 둔 판단이다. 반론도 있으리라. 기꺼이 듣겠다.  

또 하나, ‘(인류의) 전쟁과 평화’를 다루는 학문인 국제정치학에서 ‘너’와 ‘나’ 즉 ‘우리’의 정체성(體性 아이덴티티)을 표현하는 어휘가 저렇게 두부처럼 말랑거린다면, 이는 바탕 어그러진 공부가 될 터이니 걱정이다. 

서양학문 이론의 낱말에 맞는 바른 한국어 짝을 찾아야 비로소 우리의 학문이 된다. 말의 뜻을 규정하고 고정하는 정의(definition)를 정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첫 계단인 언어가 삐걱거리지 않아야 국제정치학과 같은 학문이 (인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 뿐만이 아니다. 쌔고 쌨다. 큰 학자들도 아시안게임의 운동선수나 중계방송팀처럼 ‘저희(나라)’ 타령을 삼가지 않는 판이다. 이런 고언(苦言)이 과연 도움이 될까.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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