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문제열의 窓] 추석엔 빵보다 송편이 제격이죠
상태바
[문제열의 窓] 추석엔 빵보다 송편이 제격이죠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9.26 09: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떡보다 빵이 더 익숙한 요즘이라지만 송편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추석음식이다. 추석 때 제일 먼저 수확한 햅쌀과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을 ‘오려송편(올송편)'이라 해 한 해의 수확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조상의 차례 상과 묘소에 올렸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와 송편이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1849년 조선 헌종 때 나온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따르면 정월 보름날에도 농가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집집마다 송편을 만들어 나이수대로 나누어 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송편은 멥쌀가루로 반죽을 만든 뒤 그 안에 콩, 깨, 밤 같은 ‘소’를 넣고 반달모양으로 빚어 솔잎을 깔고 쪄낸 전통 떡이다. 송병(松餠) 또는 송엽병(松葉餠)이라고도 부른다. 솔잎을 넣고 찌는 것은 송편이 서로 붙지 않게 막아주면서도 향을 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송편에 솔잎을 넣는 것은 소나무처럼 사시사철 푸르고 건강하라는 소원을 담았다고 한다. 솔잎에는 살균력이 강한 테르펜과 산화를 억제하는 피톤치드가 들어 있어 방부(防腐)효과가 있고 송편이 잘 상하지 않게 하는 효능도 있다.

송편은 안에 들어가는 소의 종류에 따라 팥송편·깨송편·대추송편·잣송편 등이 있다. 송편을 만들 때 쌀가루에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모시잎 찧은 것을 섞어 만들면 모시잎송편, 쑥을 넣어 만들면 쑥송편, 소나무 껍질을 넣어 빚으면 송기송편이 된다. 이 외에도 도토리가루와 칡가루, 호박가루를 섞어 빚는 도토리, 칡, 호박송편이 있다. 또한 흰 송편에 여러 가지 색으로 꽃모양을 내어 화려하게 빚은 송편을 꽃송편이라 하고, 매화꽃과 같이 꽃의 모양을 본떠 만든 매화송편이라 한다.

송편은 지역 마다 찌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모양이나 색, 특산물을 이용한 소, 반죽재료가 다르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흰 쌀가루에 치자(노란색), 쑥(초록색), 오마자(붉은색), 송기(갈색), 포도즙(보라색) 등의 재료를 첨가해 만물의 조화를 이루는 알록달록한 오색송편을 만든다. 예쁜 반달모양으로 소는 참깨와 설탕을 넣어 먹기 좋게 작게 빚는다. 강원도는 감자의 고장인 만큼 감자송편을 주로 만든다. 떡 반죽을 만들 때도 멥쌀가루 대신 감자녹말을 이용한다. 팥, 강낭콩을 소로 넣어 손자국 모양을 내어 빚는 것이 특징이다. 전분 성분 때문에 떡을 찌고 난 후에 보면 속이 투명하게 비친다.

충청도는 예부터 호박 농사를 많이 짓던 곳으로, 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가루를 멥쌀가루에 섞어 호박송편을 빚었다. 단호박과 대추, 참깨 등을 송편의 소로 이용했고, 호박모양과 국화 모양의 송편도 유명하다. 경상도는 산간지역에서 나는 칡을 이용해 만든 칡송편이 유명하다. 일반 송편에 비해 큼직하고 투박한 것이 특징이며 강낭콩과 팥을 소로 넣는다.

전라도는 영광과 고흥 지역에서 모시가 많이 재배되어 푸른 모시 잎을 삶아 멥쌀과 함께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고 콩, 팥, 밤, 깨 등의 소를 넣어서 빚어낸 모시송편이 유명하다. 모시송편은 상온에서 쉽게 굳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송편을 솔병이라 부르며 동근 접시 모양으로 만든다. 완두로 소를 가득 채우는 것이 특징이며, 쌀이 귀했기 때문에 추석만이라도 넉넉히 먹자는 의미로 둥글고 크게 송편을 빚었다는 설이 있다.

추석 풍경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송편을 빚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모습이다. 추석을 앞두면 나는 소쿠리를 들고 뒷산으로 올랐다. 소나무가지를 꺾어 연한 솔잎만을 뜯어 깨끗이 손질해 준비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아버지는 떡가루를 곱게 빻아 오시고, 어머니는 검정콩을 불리고, 밤을 까고, 참깨와 설탕을 섞어 소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 없는 힘 다 써 가시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반죽을 하셨다.

온 가족은 물론 이웃 아주머니들까지 오셔서 너스레를 떨며 송편을 빚었다. “처녀들이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좋은 신랑을 만나고, 시집간 애가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며 송편 빚기에 정성을 다했다. 본격적으로 송편을 만들면 아버지는 장작불을 지피고 솥에서 한판 찌어내신다. 은은한 솔 내음과 떡에 나타난 솔잎 자국은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여기에 참기름 바른 쫄깃쫄깃한 송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사는 형편이 나아져 더 풍요로워 졌건만 요즘은 송편을 빚는 가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송편생각을 하다 보니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전국매일신문]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