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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엄벌만능주의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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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엄벌만능주의 벗어나야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2.2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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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30년 무재해 사업장인데도 요즘 중대재해처벌법만 생각하면 잠이 안 옵니다. 아무리 충실히 준비한다 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인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소규모 사업장 대표의 하소연이다. 이처럼 지난 1월 68만 곳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에 경기침체로 힘든 영세 중소기업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 역할이 절대적이어서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아 부재 시 폐업 가능성이 높고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게 될 우려가 크다.

지난 22년 2월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이유는 노동자 안전에 필요한 비용에 대한 기업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전에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제철소 쇳물에 빠지고, 조선소에서 추락해 사망해도 기업의 재무제표와 주가, 원청 책임자들의 신상엔 별 변화가 없었다. 사회의 방치 속에 ‘죽음의 외주화’는 계속됐다. 법이 시행되면서 노동자 사망사고의 위상이 달라졌다. 회사 대표의 법적 처벌과 재무제표상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안전은 헌법에 정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조항과 맥을 같이 한다.국가의 최소 구성원이자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인이나 다름없는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자연재해로부터의 국민 보호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 생활과, 일하는 현장에서의 안전 또한 국가와 정부의 매우 중요한 책무일 것이다.

최근 들어 건설 공사나 제조공장 등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의 사망사고 발생이 빈발하면서 이에 대한 예방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추락이나 붕괴사고, 토목 현장의 매몰사고, 지하철 및 빵공장의 끼임 사고 등 끔찍한 산업재해를 당할 때마다 반복돼 왔다. 이러한 사고로 인해 귀중한 인명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현장의 안전 대책을 더욱 강화하라는 비판과 지적이 계속된 것이다.

안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사업장에서 드러나는 안전 불감증 때문에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안타깝고 분통 터지는 사고가 멈추질 않고 있다. 다시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이 지켜지지 않아 그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잃고 신체적 상해와 경제적 손실을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점에는 국민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 골드라인에 여론의 질타 이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출근 시간 혼잡 역사에 소방 구급요원이 배치됐고, 버스전용차로를 김포공항까지 연장해 승객을 분산시키고 있다. 퇴근 시간에 몰리는 승객을 통제해 긴 줄을 세워 플랫폼으로 유도한다.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지만 이런 조치가 마련된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관계 기관별로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안전사고 예방에 나서고 있어서다. 이런 대응 방식과 달리 사후약방문식으로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작동되는 독특한 법이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다. 명칭에서 보듯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을 물어 사업주를 처벌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구속 등의 처벌이 두려운 사업주가 재해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유감스럽게도 효과는 기대 이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2022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는 874명으로 전년보다 46명 더 늘었다. 지난해(1~9월) 사고 사망자는 590명으로 전년의 632명보다 줄기는 했다. 그러나 사망 사고 발생 빈도가 높은 건설업의 착공 면적이 전년 동기 대비 44.2% 가까이 줄었고, 제조업 생산이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의 최대 폭으로 감소한 사정을 고려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는 사실상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 활동이 위축될수록 근로자의 사고도 줄어드는 까닭이다. 산업재해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좀처럼 줄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재해 예방시스템에 있다. 고용부 소속 산업안전감독관부터 전문성이 떨어진다. 직무와 무관하게 일반 공채로 선발하는 데다, 상당수가 순환보직을 통해 산재 예방행정에 투입되는 탓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적용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 165명 중 107명(65%)이 하청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조선소는 직접 생산량의 약 80%를 하청 노동자가 담당해 특히 사고 위험성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다단계 하청과 이주노동자 고용이 만연해 현장의 위험성을 더욱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민주당은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중처법 적용을 확대하는 규정의 시행을 2년 유예하자는 국민의힘 제안을 거부했다. 이로써 지난달 27일부터 중처법 대상 사업장이 50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확대됐다. 중소기업계는 전문 인력 확보와 시설 개선 등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며 유예 불발에 반발했다.

그러면서 예비 범법자로 몰릴 위기에 처하고,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 공포까지 느낀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처법이 재해예방 감소 효과를 얻지 못하고 사업주 처벌에만 집중돼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럼에도 법의 기본 취지는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사업주·경영자에 위험방지의무를 부과하고 처벌수위를 명시함으로써 경영에 있어 안전에 대한 책임을 강화한 것이다.

사업주도 더 이상 사업장의 안전, 보건 사항을 방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 일하다 죽지 않는 안전한 일터 조성을 위해서는 기업만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 안전에 필요한 대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감독관 규모만큼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2022년 기준 810명으로 2016년(350여 명)에 비해 2.3배 정도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며 인력을 대거 확충한 결과다.이는 노동자 100만 명당 39.6명으로 미국의 12명, 일본의 16.8명보다 훨씬 많다. 이 정도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도 산업재해가 대폭 줄었어야 마땅하다. 전형적인 고비용 저효과 구조다. 50인 이하 사업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적용되면서 대응 여력이 부족한 영세사업장의 공포가 증폭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산업현장의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재해 예방 기능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법 개정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엄벌만능주의가 산업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망령부터 걷어내야 한다. 공개처형도 불사하는 북한, 중국 등이 산업재해 예방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처벌’하겠다는 것보다 이를 ‘사전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국민을 보호하는 법이 되도록, 불미스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정부와 국민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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