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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공천 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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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공천 분란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3.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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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공천 파동은 늘 있었지만, ‘학살’이란 살벌한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16대 총선 때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 현역 의원 43명을 일거에 낙천시켰다. ‘2월 18일 금요일의 대학살’로 불렸다. 공천 학살은 대체적으로 보수 정당에서 이어졌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유명한 친이명박계의 친박근혜계 학살이, 4년 뒤엔 친박계의 친이계 ‘보복 학살’이 진행됐다. 2016년엔 유승민계 학살로 이어졌고, ‘옥새 나르샤’ 파동까지 낳았다. 공천 학살은 달리 보면 물갈이다. 성공 요건은 얼마나 참신한 인물로 채워 넣느냐, 명분이 있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학살로 인한 빈자리에 오세훈 원희룡 등 국민적 호감이 있는 젊은 신진을 대거 채워 1당을 거머쥐었다. 2008년엔 대대적인 영남권 물갈이로 잘릴 만한 사람들이 잘렸다는 공감을 얻었고, 2012년엔 ‘하위 25% 컷오프’ 등 박근혜식 시스템 공천이 공정했다는 평가를 받아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새누리당)과 2020년(미래통합당)엔 대대적 물갈이를 천명해놓고도 인적 쇄신을 하지 못했고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만 키워 ‘폭망’했다. 아침과 저녁이 다른 게 민심이다.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쉽다. 권력의 오만과 폭주는 민심을 잃는 지름길이다. 권력에 취해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그들만의 세상을 고집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문재인 정권이 그랬다.

그 전 정권도 예외가 아니다. 정권을 잃는 과정은 닮은꼴이다. 지지율이 높다고 과신하면 안되는 이유다.올해 초만해도 더불어민주당이 4·10 총선서 과반의석을 얻을 거라는 데 이의를 단 사람은 없다. 그만큼 유리했다. 여권은 내부 갈등으로 자멸하는 분위기였다. 30%대 초중반에 갇힌 윤석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여당이 수도권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였다. 오죽하면 집권당 대표를 9개월여 만에 바꿨을까. 민주당은 런 압승 분위기에 취했다. 총선 때까지 어어질 것으로 낙관했다. 여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다수가 조소를 보낸 이유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등장도 평가절하했다.

반짝했다 사라질 바람으로 봤다. '윤석열 아바타'라는 공격으로 금세 사라질 것으로 여겼다. 자당 의원들이 탈당하고 유력한 대선주자가 신당을 만들어도 강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친명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한 배경이다. 그만큼 자신만만했다.이런 오만이 화근이었다. 한동훈 위원장 등장 후 총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총선이 대등한 게임을 넘어 여당에 유리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 야당이 장악한 한강벨트와 낙동강 벨트가 흔들리고 있다.두 곳은 이번 총선의 최대 승부처다. 여당은 낙동강 벨트 탈환을 위해 중진들을 속속 투입했다. 한강벨트에도 경쟁력 있는 후보들을 배치하고 있다. 여당의 승부수가 먹히는 분위기다.

여당 후보가 앞서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한 달 전과는 완전 딴판이다. 원인은 명확하다. 한동훈 위원장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처한 입장과 리더십의 차이다. 한 위원장은 가진 기득권이 없다. 총선에 출마도 하지 않는다. 금배지 달 일이 없다. 총선 후 훌훌 털고 떠나면 그만이다. 만약 여당이 승리한다면 한 위원장에게 여권의 힘이 실릴 수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이 부인했지만 미국행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대선은 3년 넘게 남았다. 민주당의 공천은 거꾸로 간다.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 이 대표는 친명계를 칠 수 없다.

측근들의 헌신과 희생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비명계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른바 '친명횡재 비명횡사' 공천이다. 역풍이 불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총선 승리가 아니다. 충성심 강한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이재명당이다. 시법리스크에서 자신을 보호할 방탄당이다. 자신의 체포동의안이 당내 반란표로 통과된 트라우마를 떨칠 수 없다. 총선서 이기면 좋겠지만 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재명당에서 차기를 준비하면 된다. 민주당의 선거 패배 위기감이 커가고 있다. 김부겸 정세균 총리와 원로들까지 나서 시정을 요구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다.

이 대표는 개의치 않는다. 마이웨이다. 이 대표는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카드다. 친명공천을 완료한 뒤 대표직을 던지는 것이다. 친명공천을 통해 이재명당은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이상 대표직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몇달 쉬었다 복귀하면 그만이다. 이 대표는 사퇴카드로 국면을 바꾸고 책임론을 비켜갈 수 있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판단은 국민 몫이다.여야 모두 오는 4월에 치러질 총선 막바지 공천에 접어들었다. 위성정당을 내세운 거대 양당의 비례대표 선거 준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앞 칸을 확보하기 위해 이른바 ‘현역 의원 빌려주기’도 불사할 모양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도긴개긴’인데 정당마다 공천과 위성정당을 두고 눈 흘기기를 멈추지 않는다. 매일 쏟아지는 논평과 정치인들의 기사를 종합하면 ‘내로남불’ 일색이다. 얼핏 사자성어와 같이 보이지만 네 글자 중 한자어는 불(不) 한 글자뿐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내로남불’이 공식 석상에서 처음 쓰인 건 정치권이다. 신한국당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1996년 15대 총선 직후 여소야대가 된 정국 당시 신한국당이 무소속 의원 등 11명을 영입하자,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신한국당의 ‘의원 빼가기’를 비판했다.

박 전 의장이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부동산을 하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후 내로남불은 정치계 단골 사자성어가 됐다. 최근엔 공천을 두고 거대 양당이 연일 ‘내로남불’을 입에 올린다.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26일 “민주당 시스템 공천 열차 이름은 ‘내로남불’, 출발역은 ‘비리’”라고 겨냥했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이에 앞서 지난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최근 민주당의 공천 갈등을 연일 비판하는데 왜 정작 정부와 여당에 대한 물음에는 답하지 못하느냐”며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쏘아붙였다.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에 와닿는 비전이나 정책을 들은 기억이 없다.

상대 정당을 함락시키는 것이 최전선 임무인 것만 같다. 지방소멸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이젠 ‘내로남불’ 정쟁 대신 ‘솔선수범’ 정책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논란의 화살이 이재명 대표로 향한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입당도 자유고 탈당도 자유”라며 수습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니 이 대표가 지난해 체포동의안 국회 표결 때 가(可)표를 던졌을 것으로 의심되는 비명계, 나아가 향후 당권과 대권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공천 보복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둔 정당 공천 과정은 늘 시끄럽고 요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은 총선을 어떻게 치를 건지에 대한 전략은 없이 계파적 이해관계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러다간 4·10 총선에서 정부 여당에 대한 심판은커녕 당장 야권 분열로 탈당파 신당과 주도권 쟁탈전을 치러야 할 형국이다. 이대로라면 정권심판론을 지지하는 여론도 민주당에 과연 그 역할을 위임해도 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의 탈당 러시로 총선 전에 160석이 무너질 수도 있다. 강물이 넓은 바다에 이르려면 강을 버려야 하듯이 강물이 강을 버리지 못하고 강에 머무르면 썩고 만다.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이란 미국 전직 대통령의 정치적 명언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 과연 이 대표는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여기에 분명한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 대표의 선택만 이제 남았다.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며,이것이 이 대표가 살고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는 길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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