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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서리를 밟으면 만물은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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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의 돋보기] 서리를 밟으면 만물은 얼어붙는다
  • 최승필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3.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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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필 지방부국장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는 뜻의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라는 말이 있다.

단풍잎 하나가 땅에 떨어지는 가을이 되어 서리를 밟게 되면 차츰 날씨가 추워져 끝내는 천지 만물이 모두 얼어붙는 깊은 겨울이 오게 된다는 의미로, 사물의 형태나 일의 형세가 아직 미약하나 점차 강성해질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유교의 경전 중 3경의 하나인 역경(易經)의 곤괘(坤卦, 주역 64괘 중 2번째에 있는 유교 기호) 초효(初爻, 6효 중 맨 밑에 있는 효)에 있는 효사(爻辭, 각 효를 풀이한 말)다.

이는 인간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아주 작은 조짐을 보고, 장차 중대한 결과를 예견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비유로 사용되는 말로, 보통은 좋지 못한 결과에 대한 예고(豫告)로 사용된다.

지난달 28일부터 4·10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선거판 곳곳에서 부동산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공천 때부터 자질 논란으로 비판을 받아 온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경기 안산갑 후보의 서울 강남 아파트 취득 과정에 대한 ‘불법 대출’ 의혹이 제기되면서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 후보는 지난 2020년 8월 31억 원 상당의 서울 서초구 잠원동 소재 137.10㎡ 면적의 아파트를 배우자와 공동명의로 구입하는 과정에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딸 명의로, 대구 수성 새마을금고에서 약 11억 원을 사업자금 명목으로 대출받아 대부업체 대출금 등을 충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양 후보의 아파트 등기부등본을 보면 매입 8개월 후 대구 수성새마을금고가 양 후보 자녀를 채무자로 13억2000만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소유주인 양 후보 부부는 공동 당보 명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양 후보는 11억 원 대출에 대해서는 ‘편법’이었다고 사과하면서도 ‘사기 대출’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기 대출은 사기를 당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나 기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대출기관을 속여야 한다”며 “우리 가족이 받은 대출은 돈을 빌려주는 새마을금고에서 방법을 제안해 이뤄진 대출”이라고 했다.

이어 “당시 파격적인 대출 영업을 하고 있던 새마을금고를 소개받았고, 그 새마을금고에 문의한 결과 딸의 명의로 사업운전자금 명목으로 대출을 받은 것”이라며 “편법인 줄 알면서도 업계의 관행이라는 말에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당장 높은 이자율을 감당하기 어려워 편법에 눈 감은 우리 가족은 최근 며칠 동안 혹독한 언론의 회초리에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도 했다.
양 후보는 “졸지에 파렴치범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선거운동에 심각한 방해를 받고 있고, 우리 가족은 매일같이 눈물바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정치인 양문석을 떠나서 선거 당락과 상관없이 양문석은 이제 목숨 걸고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생 자녀가 새마을금고에서 받은 11억 원 규모의 ‘사업자 대출’이 아파트 매입에 사용됐고, 양 후보 자녀가 최근 소득세와 재산세 등을 납부한 내역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사업자를 빙자한 ‘불법 대출’이라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여론은 더욱 싸늘하다.

이처럼 논란이 불거지자 새마을금고중앙회는 1일부터 해당 새마을금고의 대출 과정 전반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새마을중앙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검사 결과 위법 부당한 사항이 발견될 경우 관련 규정에 따라 대출금 회수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도 양 씨가 당시 납세 기록이 전혀 없는 등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새마을금고에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제출하고 사업자 대출로 11억 원을 받은 과정 전반을 살펴본다고 한다.
2020년 대출 당시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폭등을 막겠다며 15억 원 이상 초고가 주택의 대출을 차단하는 등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빚을 내서 강남집을 사는 것을 포기했던 시기였다.

민주당은 양 후보의 증폭되는 강남 아파트 대출 의혹에 대해 당 차원의 대응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위기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29일 YTN라디오에서 “편법적인 대출을 통해 대학생 자녀가 상당히 많은 금액의 대출을 낸 것은 다소 국민들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당내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다면 평가받아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양 후보의 아파트 대출 의혹에서 비롯된 민주당의 악재(惡材)는 예견된 일이다. 공천 때부터 자질 논란을 빚었던 양 후보에 대한 공천이 민주당에게 자칫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리를 밟게 되면 머지않아 단단한 얼음을 보게 된다는 예견된 사태를 깨닫지 못한 결과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choi_s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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