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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05.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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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존재의 당위성은 무엇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는 것이다. 수많은 국민이 영문도 모른채 수년간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외면한 지금의 국가와 정부는 사실상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 국민의 생명조차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와 정부가 경제성장이니,사회정의니,통일한국 같은 거창한 구호를 부르짖어본들 어느 국민이 믿고 따르겠는가.
옥시 대형참사는 국가와 정부의 무능함과 함께 ‘검은 자본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사건은 자본이 검은 돈으로 연구결과나 보고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실제 서울대 조모 교수, 호서대 유모 교수 등은 옥시측으로부터 연구용역비 명목으로 각각 수 억원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가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실험결과를 왜곡,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는 옥시보고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검은 돈에 매수된 무리들이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는 ‘블랙 커넥션’은 이제 우리 사회도처에 독버섯처럼 번져있다. 오히려 자본에 길들여지지 않은 집단을 찾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다. 제약업계와 의과대학 연구소간 블랙 커넥션이 대표적이다. 제약사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연구소는 연구 결과를 제약사 의도에 맞춰 내놓는게 관행이다. 연구용역을 준 자본의 의중에 반하는 연구 보고서를 내는 학자나 전문가는 업계의 블랙 리스트에 오른다. 이 리스트에 오르게 된 교수나 전문가는 업계로부터 연구 프로젝트를 따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이 블랙 커넥션으로 인한 피해는 아무것도 모르는 선량한 대다수 국민이 떠안고 있다. 옥시보고서처럼 최악의 경우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블랙 커넥션으로 인한 왜곡된 사실과 진실은 드러나기 전까지 쌍방만 알고 있을 뿐 제3자인 대다수 국민은 내막을 알 길이 없다. “모르면 당한다”는 속된 논리가 그대로 우리 사회에서 적용되고 있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자본이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더이상 진보할 수도 없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나아가기 위해서는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 블랙 커넥션을 시급히 깨뜨려야 한다. 보고서나 평가서를 낼 때 그 집단과 자본과의 특수 관계를 구체적으로 명시토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른바 ‘보고서 후원실명제’ 도입이다. 예컨대 “이 연구보고서는 A기업으로부터 3억원의 연구용역비를 받고 수행한 결과물입니다”와 같은 구체적인 문구를 보고서에 삽입하는 것을 법제화시키는 것도 해법이다.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가 사용자들의 폐 손상을 일으켜 239명이 사망했다. 피해자들의 접수는 점점 늘고 있어 사망자를 포함해 1500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 2011년 사건이 드러났는데도 옥시는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사과나 보상 없이 버텨 오다 무려 5년이 지난 이달 2일에야 처음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에 피해자들의 분노는 더 커졌고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으로 확산하고 있다. 만 1살 된 아기를 잃은 한 아버지는 “아이를 잘 키워 보려고 내 손으로 가습기 살균제로 매일 청소했다”며 “내 아기가 만 1살 먹고 입원해서 8개월 만에 사망했다”고 분노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연락을 취했지만 옥시의 반응은 없었고, 오히려 은폐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옥시는 사과가 5년이나 늦어진 이유에 대해 충분한 보상안을 마련할 준비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한 기업들중 사회적 지탄을 받은 것은 옥시뿐만 아니다. 폭스바겐은 자사 차량의 디젤엔진에서 배기가스 기준치를 조작해 판매하다가 적발됐다. 홈플러스는 고객 개인정보를 보험회사에 넘기기도 했고, 두산은 낙동강 페놀 사건으로, 몽고간장은 전 회장이, 남양유업은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 대해 갑질을 하다 불매운동을 당하기도 했다.
영국계 다국적 기업인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를 한국에서만 팔았다고 한다. 옥시는 살균제 개발 전에 살균성분제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가 제품의 유해성을 경고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실이라면 한국인들은 검증되지 않은 살균제 성분의 ‘마루타’가 된 셈이다.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단지 이윤만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은 그저 장사꾼으로 남겠지만 사회적 책무까지 고려하는 착한 기업은 소비자들이 찾게 된다. ‘기업에서 얻은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유일한 박사의 기업윤리론을 지키는 기업인들이 그립다.
서로 폭탄 돌리기만 하던 정부는 5년이 지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로 전국민이 분노하자 이제서야 피해자에 대한 생계비 등 생활지원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다. 국회는 또 어떠한가. 2012년에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한 국회보건복지위의 국정감사가 열렸지만 증인으로 채택된 옥시레킷벤키저 대표는 출석을 거부했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 쉐커 라파카 당시 옥시레킷벤키저 코리아 대표가 50억원 규모의 피해자 지원기금 조성 계획을 밝히자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국회차원의 조사는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랬던 국회가 이제 와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청문회를 여는 문제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5년동안 피눈물을 흘릴 때는 뒷짐진 채 먼산만 바라보던 정부와 국회가 이제와서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유난을 떨고 있다. 앞으로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나. 답답할 뿐이다.“빨래 끝~”이라는 유행어를 남긴 옥시의 광고 문구를 빌리자면 “정부 책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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